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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을 보내기가 이리 힘들었던가

몸과 마음의 그 오묘한 관계

by 태생적 오지라퍼

살면서 올해처럼 8월을 보내기가 힘들었던 적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들 녀석을 가졌을 때(9월말에 출산이었으니) 부른 배와 더위와 없는 식욕에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후로 이번 8월은 기억에 오래토록 남을 것 같다.

부푼 기대로 8월을 시작했건만 첫날부터 코로나19의 폭격을 맞은 것이 정말 컸다.

물론 더위도 크게 한 몫 했다.

마치 너는 이제 60대라고 무엇인가를 함부로 하겠다고 나서거나 자신있어하면 안되는 나이라고

알려주는 메시지와도 같았다.

이제는 하루에 한가지 일만 처리 가능한 상태라고

요거하고 저거하고 그 다음에 이것 처리하는 구조적인 뇌 활동은 이제 안된다고

이제는 하루에 그냥 한가지만 그것도 간신히 하는 상태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8월이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나를 힘들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최애 프로그램 <최강야구>의 연이은 패배 소식이었다.

한 주를 즐겁게 이긴 최강야구를 돌려보고 또 돌려보는 것이 낙이었는데 그것이 안되니 힘들었다.

나는 선천적인 새가슴의 소유자이고 콩닥거리거나 쫄리는 것은 볼 수가 없다.

아니 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인데

엄밀히 말하면 이긴 스포츠 경기만 좋아하는게 맞다.

올림픽이건, 손흥민 축구이건, 오상욱의 펜싱이건 나는 지는 경기는 보지 못하겠더라.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는 운동 선수가 어디 있으랴만

나에게 졌잘싸는 안타깝기만 할 뿐 실전도 녹화방송도 차마 볼 수가 없다.

그대신 이긴 경기는 보고 또 보고 박수치고 좋아라한다.

움직일 수도 없는 이 더위에 경기를 하는 것이 몹시도 버거운

이제는 다소 나이먹은 최강야구 선수들이 최고의 컨디션을 낼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아슬 아슬 한 순간에 뒤집히는 경기는 쉽지 않은 내 삶과 비슷해서 인지 차마 볼 수가 없다.

쉽고 평온하고 어려움이 없는 삶이나 압도하는 경기를 좋아라 하는 내 마음이 우습기도 한데

그렇게 살았으면 한다.

나는 그렇게 못 살았지만 아들 녀석이라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단, 열심히 노력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삶이란, 야구 경기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더라.


8월의 마지막 날 오전, 나는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카페에서 삼천원짜리 카푸치노 한잔을 마시며 (아메리카노는 코로나19 이후로 너무 쓰더라)

개학후 수업 준비와 2학기 방과후학교 운영과 학교 축제 준비를 한다.

옆 좌석들에는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분들의 수다가 만발하고 있다. 부럽다.

저녁은 흔하지 않게 아들 녀석과의 약속이 있다.

내년, 나는 서울을 떠나고 독립해야 할 아들 녀석의 거주지 예상 지역을 같이 답사해보려 한다.

직주근접을 오케이하는 마음이 바뀐 이유가 있을텐데 나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고 아들은 알려주지 않았다.

나의 역사에 기록될만큼 몸과 마음이 어려웠던 2024년의 8월이 이렇게 마무리된다.

9월에는 나도 힘을 내고 최강야구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

몸이 먼저일지 마음이 먼저일지 모르겠는데 둘 다 최상의 컨디션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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