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74
식단 일기를 쓰는 각각의 이유
거의 격주 지방 출장에다가 요새 썸을 타는지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거의 없던 아들 녀석이
어제, 오늘 이상하게 집에 꼼짝 않고 있다.
수상하다. 어제 아침 축구는 다녀왔지만 이후 계속 방에서 칩거중이다.
혼밥을 하지 않아도 되니 살짝 좋기도 했다가
데이트가 틀어졌나하니 살짝 걱정도 되고
아직 음식하는게 즐겁지만은 않은 컨디션이라 살짝 싫기도 하고
복합적인 마음이 드는 주말 점심이다.
토요일 점심은
달걀말이, 쌈배추, 야채 잘게 잘라 넣은 강된장 찌개, 돼지고기 얇게 잘라 매콤 양념에 볶은 것이었고
저녁은 당근, 우엉, 달걀, 오이, 깻잎 넣은 김밥에 김치찌개였다.
아픈 후에 입맛이 떨어지면 나의 경우에는 짠 맛이 심해져서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먹는게 꺼려진다.
이제야 강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살며시 끓여보았는데 아직도 감당이 잘 되지는 않았다.
김밥은 심심하게 만들었는데 꼬랑지 세 개를 먹고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남들이 보면 바디 프로필을 위해서 다이어트 하는 중인줄 알 것이다.
오늘 아침은 달걀 풀고 우유 적셔서 버터에 구은 식빵과
양배추 얇게 썰고 베이컨 굽고 파란 사과 하나 빨간 사과 하나 잘라서 먹었다.
제법 브런치 느낌이 났다만 식빵 반으로 자른 것 두쪽에 사과 반개쯤 먹었다.
점심은 정말로 오랜만에 중식을 준비하려 한다.
물론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 데우거나 볶거나 하는 밀키트 위주이다.
중식을 집에서 직접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나는 엄두도 못내보는 일이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양장피와 탕수육에다가 짜파게티를 하나 끓여 먹으면 고급 중식당 비슷할라나 모르겠다.
저녁은 아들 녀석의 약속이 생기기를 기대하고 있다.
혼자 먹는다면 어제 저녁 산책에서 사가지고 온 찐 옥수수로 대신하면 될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음식을 하긴 하는데 내가 잘 먹지를 못한다는 점이다.
이리 먹어서는 하루 4시간 수업을 버티기가 힘든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미식가이던 아버지는 입맛이 극도로 없으시면 입맛 도는 주사도 맞으실 정도였다.
그만큼 먹는 것이 주는 행복에 절대적이셨던 분이다.
나도 아마 닮았을 것이다.
아직 주사의 힘을 빌리기는 싫고
제발 점심 메뉴가 입맛에 거슬리지 않기를,
매번 초기 입덧 상태나 장거리행 버스에서 느끼게 되는 멀미 상태의 뱃속이
평온해지기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아마도 개학해서 수업을 하고 기력이 떨어지고 극도로 배가 고프면
급식을 많이 먹게 되리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48kg의 몸무게는 한때 나의 희망사항이었지만
이렇게 아프고 늙어서 48kg될 줄은
60대가 되어서 이리 될 줄은 정말 몰랐다.
2kg를 찌우는 것이 당면 목표가 될 줄은 더더욱 몰랐었다.
대학 시절 저녁 굶는 다이어트에 돌입한지 이틀만에 거실에서 어지러워 쓰러진 경험이 있고,
날 때부터 그 당시 보기드문 4.3의 kg초우량아로 태어났다는 것을,
첫 학교에서의 별명이 초대형 맘모스였다는 것을
살빼기를 위한 식단 일기를 여러해 작성했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최근에는 너무 안먹어서 걱정되어 식단을 적어보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최근에서야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늙어서 말라 보이는 것은 결코 자랑스럽거나 좋은 일이 아니라는 엄마의 말을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점심 준비에 나서보자.
양장피의 겨자소스와 탕수육의 달달함이 내 혀끝을 자극해주기를
그리고 디저트 한 잔이 내 뱃속의 미식거림을 진압해주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면서 말이다.
아들 녀석은 짜파게티, 나는 양장피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중국 요리는 먹고나서 설거지할때 그릇에 묻은 기름끼가 많아서 힘들다. 그래도 꽤 먹었다. 그리고 아들 녀석은 저녁에 나간다고 한다. 나도 아들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