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70
받은만큼 돌려줄수 있다면...
내일이 나의 마지막 학기의 진짜 진짜 개학일이다.
오늘은 오전에 부장회의 겸 과학실 공사 현황을 점검을 하고 돌아왔다.
오전만 정리하고 왔는데도 하루 온종일 수업한 것만큼 정신이 없고
공사 후 나는 특유의 냄새로 두통이 시작되었다.
과학실 창문을 모두 열어두고 왔으나 내일 그 냄새가 다 빠졌을지는 알 수 없다. 실내화는 빨아두고 왔는데 마를지는 모르겠다.
2학기 들어서는 실험조 구성을 바꾸어 주려한다.
사실 중학교 수준에서의 조별 활동은 어느 조에 들어있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경험이 된다.
열심히 참여하는 조에 속하게 되면 한 학기가 편안하고 배울 것도 많고 어떻게 보면 무임승차의 즐거움까지도 느끼게도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조별 활동하는 것이 두렵고 무섭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대학을 가서도 팀플을 하게 되고 회사에 가서도 협업을 하게 되고
인생이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므로 조별활동은 경험하면서 꼭 극복해 나가야하는 과정이다.
1학기에는 학생을 모르는 상황이니 번호순으로 실험조를 구성했으나
2학기에는 뽑기를 통해 실험조를 구성하려 한다.
성적순으로 실험조를 구성하면 불만이 나올 수 있다.
자신의 손으로 뽑기를 하면 그날의 운세려니하고 수긍하게 된다.
뽑기를 한 결과를 보면 걱정되는 실험조가 있게 마련이나
나의 오랜 경험을 살려 약간의 매리트를 부여하는 융통성 있는 진행을 해보려 한다.
따라서 첫 시간에는 운명의 뽑기가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은 아직 모른다. 개학 기념 깜짝 이벤트다.
목요일에는 과학교과에서의 그래프 활용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는
멋진 후배 교사와의 심층 면담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다.
교사로서의 연구에 몰두하는 후배들을 보면 한참전의 나를 보는 듯 하다.
그때만 해도 학위를 하는 이유는 진급의 이유가 대부분이었고
논문 작성도 하지 않고 강의만 수강하여 대충 얻는 석사학위도 꽤 많았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리고 계속 공부를 하는 것이 교사로서의 역량을 가장 높이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 쓰는 논문들은 학교 현장 교육에 밀접한 주제라서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것이다.
학문적으로 이론적으로 연구에만 전념하는 풀타임 연구자들에 비해서는 아주 조금은 퀄리티가 낮을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경험은 전혀 없고 연구만 하는 연구자분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미묘한 중요성이 있다.
나의 석사 논문 주제는 교사 1년차에 느꼈던 점에서 출발했다.
남녀 공학이지만 남학생들은 기술을, 여학생들은 가정을 배웠던 시기였다.
남학생들은 기술 시간에 전기 부분의 수업을 배웠고
여학생들은 가정 시간에 전혀 다루지 않은 상태에서
과학시간에 전기 부분의 수업을 하게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있었다.
남학생들은 복습이고 여학생들은 초면인 내용인 셈이니 당연히 유불리가 존재하게 된다.
과학 수업에서의 성차( gender issue) 를 겁도 없이 제기한 것이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남녀학생은 모두 가정·기술을 배우게 되었고
과학교과서에 나온 그림이나 지문에서도 남녀 역할 고정등의 문제는 사라지게 되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논문 주제는 현장에 없으면 절대 생각할 수 없다.
나의 박사 논문 주제는 영재 판별 모형을 만든 것이다.
영재 학생 그룹과 일반 학생 그룹은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것일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그것을 알려면 창의성 문항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주관식 문제를 풀게 하면 그 학생의 풀이과정을 다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면 주관식 문제 풀이 방법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풀이 과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 풀이 과정 동안 그 학생의 머릿속의 움직임을 보고 싶었다.
병원과의 협업을 통해 뇌파검사를 사용해보았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으로 영재 학생 그룹과 일반 학생 그룹 사이에 문제 풀이과정에 활성화되는 뇌의 부분과 파동의 종류와 크기 등이 다 다르다는 점을 찾았다.
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있었던 논문이지만 뿌듯하기도 했고
지금도 나의 제일 큰 관심 분야는 영재교육인데 현재 그렇게 부각되고 있는 분야는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열심히 수업하고 부족한 부분을 열공하는 후배들을 위해서 인터뷰나 설문 응답쯤은 기꺼이 하려한다.
오래전의 내가 주변과 선배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교육 분야가 많이 어렵고 인기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이어나가는 후배들을 격려할 수 있다면 나의 시간쯤은 즐겁게 투입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