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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71

팀플레이 맛보기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랜만에 수업을 하고 학생들을 만났다.

방학이 너무 길었다고, 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해주는 착하고 순수한 녀석들인데

왜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떤 생각으로 딥페이크를 만들어서 사방에 뿌리는 녀석들로 변하는 것일까?

알 수 없다. 각급 학교마다 딥페이크로 난리이다.

이제 학생들과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 것 조차 거부해야 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물론 우리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예방 교육은 꼭 필요하다.


오늘 수업은 2학년인데 역시 예상했던대로 실험조 뽑기에 진심이었다.

기도를 하고 손을 비벼보기도 하고 결과에 좌절하거나 신이 나기도 했다.

금손과 똥손의 차이는 분명하다.

이번 단원은 동물과 에너지 – 소화계, 순환계, 호흡계, 배설계 - 에 대한 수업이 진행된다.

의학계열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건강한 생활의 기본이 되는 내용이니 몹시 중요하다.


첫 번째 조별 활동으로는 소화기관 조사하여 발표하기를 진행한다.

입과 식도, 위, 소장, 대장, 간과 이자를 주제로 각 기관별 소화 작용 및 관련 질병과 예방 사례 등을 조사하여 간단하게 발표하는 활동이다.

나에게 설명을 듣기 전 예습 활동이 되는 셈이다.

한번 자료를 조사하고 친구들의 설명을 듣고 교과서 내용을 살펴보면 학습효과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 구성된 조별로 서로의 성향을 이해하고 협동하는 팀플레이를 맛보게 된다.

같은 조로 활동을 해보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회사에 있어도 직접적으로 같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부딪혀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절반정도밖에는 알지 못한다.

일을 함께해봐야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법이다.

다른 조는 주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산출물을 만들고 어떻게 발표하는지를 보는 것처럼 좋은 학습은 없다.

교사가 가르쳐주는 것보다 동료가 알려주는 것의 효과가 더 높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조별로 자료를 찾고 산출물을 만들면서 티격태격하는 과정은 조금은 답답하고 힘들지만

교사로서는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고 지켜봐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방학 과제로 제시한 식물 관련 사진 올리기와 과학책 읽고 독후활동지 제출하기는

생각대로 소수정예만 결과물을 제출했다.

방학 과제를 내는 학생들은 역사상 최고의 모범생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이다.

나도 과거에 그랬으니 말이다.

주어진 과제를 잘 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과제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사람은 더 훌륭하다.

그런 사람이 영재군으로 분류된다.

그렇지만 영재가 그리 흔한 것은 절대 아니니 주어진 과제라도 빠짐없이 챙기는 학생이면 최고 수준이다.

어떤 분야에서이건 최고 수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한 것이고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다.


개학 이틀만에 목소리는 잠겼으나

밥 많이 먹고 화장실 잘 가고 꿀잠잔다.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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