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79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지만 나는 보고 싶다.
오전에는 갑자기 추가된 외국어능력시험 감독을 하러 나섰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별도의 추가 고사실에서 시간을 추가 제공받으면서 시험을 볼수 있다.
오늘 그런 응시자가 있다는 것을 갑자기 파악하게 되어
부랴부랴 고사실을 하나 더 추가하고 감독을 섭외한 것인데
지난 주가 다들 힘든 주였고 갑자기 시간을 낼만한 젊은이들은 없는지라
나이 든 내가 땜빵을 기꺼이 해주기로 했다.
조용한 주말 학교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여유롭게 텃밭 작물도 한번 살펴보고
역주행중인 명자나무, 자목련에게 눈길도 한 번 주고
외롭게 피어있는 곧 못보게 될 과꽃과 장미, 배롱나무에게도 사랑을 보내고
미숫가루 한잔을 마시고 시감을 맞이했다.
다음 주 수업 준비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면 되겠거니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별도 고사실의 응시자가 나타나지를 않는다.
보통 1~2명이 시험을 치루게 되는데 아무도 오지를 않는 것이다.
고사본부에 연락도 없었다고 하니 노쇼인셈이다.
20명이 시험보는 교실에도 보통 3~5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험 응시료가 제법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응시 사유는 모두가 개인적인 필요에 의한 것일텐데
부득이하게 질병 등의 사유가 아닌 이유 없는 노쇼들이 꼭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무언가를 계획했으면 잘하든 못하든, 되든 안되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시도를 해보아야 계속 할 것인지 방향을 바꿀 것인지 포기하고 다른 것에 전념할 것인지 등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은 나의 생각인데 너무 꼰대스러운것일까?
시감을 해야되는 그 시간에 빈 교실에서 나는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 심채경 저>
TV 프로그램에서 야무지고 조근조근하게 이야기를 잘 하던 모습을 보았었다.
글도 꼭 그렇게 천문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무리 없게 술술 잘 읽히게 썼다.
내가 과학교사의 수업 이야기를 쓰는 이유와 방향과 맞닿아있다.
특히 와닿은 이야기는 그렇게 전문 분야의 학자임에도(우리나라 천문학 연구진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여전히 비정규직처럼 연구 기간이 끝나면 앞날을 고민하고
다음 연구 계획서가 채택되기를 그래서 멋진 팀에서 멋진 연구가 진행되기를 소망하며
학회지 발표나 기타 직장 지원 등에서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도하고 이겨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만 여러번 실패하는게 아니었다. 나만 힘든게 아니었다.
이렇게 모두가 치열하게 사는 삶인데
외국어능력평가 시험을 본다고 스스로 접수해놓고
무슨 무슨 이유로 보러 오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내일부터는 3학년과 2학년 모두 천문학 분야 수업이 진행된다.
야구부의 승리 소식이 전해져왔으니 그래서 내일은 야구부의 수업 참여가 불가능하니
일단은 순서를 바꾸어서 쉬운 부분부터 수업을 해볼까 한다.
어려운 내용은 야구부가 돌아오면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
천문학 부분의 수업은 사실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여서
자주 볼 수 있는 생명과학 부분 수업보다 난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제 막 천문학을 배우는 중학생은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이나 달을 꼭 봤으면 한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그 멋진 장면을 꼭 한 번쯤은 담아보기를 추천한다.
프로필 사진으로 쓰기 딱 좋은 그런 사진 말이다.
위 표지 사진은 열흘 전 출근길에 역주행중인 자목련과 그 위에 걸친 달을 찍은 것이다.
그런데 나를 빼고 아무도 그 멋진 장면을 올려다보지 않았더라.
천문학을 배우지 않아도, 관심이 없더라도 자연의 이런 멋진 모습은 눈에라도 꼭 담아보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