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80
꿩 대신 닭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지칠대로 지친 어제 저녁은 갑자기 꽃게탕이 먹고 싶었다.
갑자기는 아니다.
대형 마트에서 파는 꽃게를 살까말까 고민했었다.
올해 꽃게가 풍년이라고 들었다.
값은 적당한데 너무 많은 양을 팔아서 마음을 접었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강화도 꽃게매운탕이 나온 영상을 본 것이다.
내가 원하는 꽃게탕 스타일이 있기는 한데
어디에서 비슷한 맛을 내 줄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아들과 집을 나섰다.
먼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꽃게탕집.
여고 앞에 위치하고 있으나 몹시도 오래되어보이는 외관이 맘에 안들었다.
나는 음식점이나 기타 가게를 선택할 때도 이상하게 외관에 끌리는 외모지상주의(?)가 심하다.
아들은 비난한다.
새로 만든 음식점만 선호하는것이냐고
노포의 노하우를 무시하는것이냐고.
알고 있는데 잘 안바뀐다.
디자인과 건축에 관심이 많다고 좋게 포장해본다.
반대편 맛집이 많이 모여있는 길목에 들어서본다. 처음 와보는 곳들이다.
특히 금요일 저녁 이 시간에 사람으로 꽉찬 맛집 거리는 더욱 낯설기만하다.
고기집, 닭집은 많은데 의외로 꽃게탕집은 많지 않았고
한참을 걸어서 보이는 음식점이 마지노선인 듯 하여 내키지는 않지만 들어갔다.
더 이상 가보자고 했다가는 아들 녀석이 화를 낼 듯 해서 말이다.
술 손님으로 가득한 식당에는 새우구이나 조개찜을 먹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고
꽃게탕은 우리밖에 없는 듯 했다.
손님이 많아서 밥은 새로 짓는 중이라고 했고
옆 테이블과 메뉴는 계속 혼동하여 서빙이 이루어진다. 벌써 기분이 별로이다.
오랜만에 삶은 콩, 고동, 번데기가 나왔고
간장게장이 나왔으나 나는 손을 대지 않았으며
김치는 젓갈이 별로 들어가지 않은 시원한 것이었고
기대했던 꽃게탕은 진한 토종 된장 베이스에 꽃게는 사이즈가 제법 컸으나
가격은 그다지 싸지 않았다.
아들은 첫번째 보았던 식당 음식맛이 나았을수 있다했다.
그곳은 동네 장사이고
그러니 맛이 없으면 버티지 못할것이고
이곳은 뜨내기 지나가는 손님들이 주 대상이라고.
홍보와 마케팅 업무 담당자의 시각이 나와 다르긴하다.
내가 원하는 꽃게탕은 된장과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조금은 섞여있는 텁텁하면서 칼칼한 맛이었다.
걸쭉하나 깊은 맛이 우러나는 어려운 수준의 것이다.
옛날 강화도 어떤 식당에서 호박고구마를 가득 넣은 꽃게탕을 먹었었다.
그 날 이후로 나의 꽃게탕 만족도는 그때 그맛과 자연스럽게 비교되었다.
얼마나 맛있다고 생각했었는지
나는 그 이후 어설픈 운전 솜씨로 친정 부모님 두 분을 태우고는
강화도 그 식당을 찾아 찾아 갔었대랬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그 시절에 말이다.
절대 미식가이셨던 친정 아버지도 만족해하셨던
그리고 밥을 먹고 강화도 바닷가를 걸었던 정도로 정정하셨던 그 때 두 분의 기억이 나서였을까?
나는 어젯밤 꽃게탕을 많이 먹지 못했고(그런데 왜 배는 아팠을까?)
오늘은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 동남아식 꽃게 튀김에 자연스럽게 손길이 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가격이 사악하더라. 꽃게는 풍년이고 우리나라 꽃게라는데 가격은 왜 그리 비싼 것일까?
꽃게를 사서 내 방식대로 꽃게탕을 끓일까말까를 또 고민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다음 주 다시 지방 출장이란다.
참아야겠다.
사진은 꽃게 튀김 대신 사온 대창 덮밥이다.
어제 그 꽃게탕보다는 훨씬 맛났다.
꿩 대신 닭인셈인가?
닭이 더 나을 경우에는 웬지 5,000원짜리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