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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Oct 29. 2024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89

갑상선암이 나에게 미친 긍정적인 영향

오늘은 내 옆자리 학년부장님이 병가를 들어가기 전 마지막 날이다.

젊고 활기찬 나의 20여년전 모습을 보는 듯한

스포츠를 사랑하는 점이 나와 닮은 음악선생님이다.

여름 즈음 추적 검사를 해오던 갑상선 혹이 부쩍 커졌고

악성으로 의심된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고

의료대란으로 수술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 요즈음인데

다행히도 내일 입원하고 모레 수술에 들어간다고 한다.

문득 이제는 10년이 넘은 나의 갑상선암 수술 즈음이 기억나는 오늘이다.


내가 암환자로 분류되기까지는 아마 일주일 정도가 소요되었던 것 같다.

그해 여름 처음으로 나는 대학병원의 고급(?)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모교여서 그리고 당시에 겸임교수여서 50% 정도 할인을 받아

오전에 편하게 모든 검진을 끝낼 수 있었는데

갑상선과 유방 초음파 검사에서 모양이 안 좋은 것이 발견되었다했고(검사 담당자의 얼굴표정이 안좋았다.)

수면 내시경으로 위와 장 검사를 한 후

채 마취가 풀리기도 전에 갑상선 세침검사를 진행했다.(그래서 세침검사가 아팠다는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리고는 3일 뒤 대전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중이었는데 대학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검사 결과 갑상선암으로 판정된다. 빠른 시간안에 진료를 잡아주겠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다.

나는 연수를 함께 받고 있던 선생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그분들이 더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나는 믿기지가 않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암판정을 받는 사람들이 그럴것이다.

나는 심한 피로감을 빼고는 딱히 증상도 없었으니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병원 진료에 가니

수술 날자를 빨리 잡자했고

보호자는 왜 같이 안왔냐고 했고

수술 전 해야 하는 검사만 여러 종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학기 개학하고 바쁜 학교에 짐이 되는 것이 싫어서(지독한 민폐 기피자이다.)

추석 연휴 시작 전날로 수술 날자를 잡고

일단 3주일 병가 진단서를 내고(이후에 2주를 더 쉬긴 했다만)

기간제 선생님께 수업 내용 안내서를 꼼꼼이 남기고

기타 해야 할 일을 기획 선생님께 안내하고

입원 전날까지 쉴새없이 일을 했다.(아마 내 옆자리 학년부장님도 비슷할 것이다.)

다행하게도 그 해 나는 담임이 아니었는데 내 옆자리 학년부장님은 담임이기도 한다.

마음이 더 무거울 것이다.


수술 전 날 많은 지인들의 위로 문자가 왔고

이대로 혹시 잘못되어 죽는다해도 그렇게 아쉬울 것은 없겠구나

하나뿐인 아들 녀석 장가가는 것을 못본다는 것 빼고는

그런 생각을 하며 눈물 한 방울과 함께 긴 잠을 자고나니 수술 끝나있었고

각오한 것보다는 통증이 심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회복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하루에 자라나는 손톱만큼씩 나아지는 날들을 보냈다.

어떤 날은 나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다음날은 또 더 안 좋은 것같아 우울해지는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암이긴 했지만 다행히 다른 곳으로의 전이가 없다는 것에 위로를 삼았고

모기 목소리지만 소리가 나온다는 것에 행복했고(잔기침은 꽤 오래갔다.)

그렇지만 이제 교장, 교감으로의 승진에 대한 욕심은 버려야겠구나 생각했다.

승진에 대한 체력 소모와 감정싸움과 진흙탕에 발을 담그는 대신

내가 좋아하는 수업하는 것에 전념하는 것만 하자고 마음이 간단하게 정리되었었다.

그리고 지금도 1년에 한번씩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약을 먹고 이만하니 다행히라 생각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즐거운 수업과 함께 정년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갑상선암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고 하면 우습겠지만

그때 나를 한번 쉬어가게 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내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옆자리 학년부장님께 홍삼을 선물하면서 이야기했다.

쉬어가라는 메시지를 받았으니 이 기회에 푹 쉬시라고

일은 남은 사람들이 나누어서 잘해보겠다고

수술 후 한달 동안은 날것과 식품보조제 등도 먹지말고 오로지 병원 약만 드시라고

빠른 회복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경험에 우러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도움이 될런지는 모르겠다만

그리고 오늘 그 반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을 못보게 되어서 슬픔과 걱정의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을 위하여 울어주는 학생이 아직도 있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학생들에게는 아프다고만 이야기했다고 한다.)

내가 해야할 일이 조금은 늘어날지 모르지만(축제때 뮤지컬발표를 함께 진행한다) 기꺼이 감당할 것이다.

나도 과거에 이렇게 도움을 받았었을것이고 

도와줄 수 있다는게 도움을 받는 자리보다 백배 나은 것이니 말이다.

누군가에게 무지무지 중요한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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