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 투어 스물 여섯번째
창경궁에서 서울대학교병원까지
오늘 오후에는 출장을 나갔다.
방학 중 이루어지는 학생들의 학습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평가였고
방과후학교 담당자인 나와 업무 관련성이 조금은 있는 일이었고
좋은 기회이니 아이들에게 홍보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복잡한 내용의 출장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무슨일이든 자세히 여러 번 안내를 하는 일이 중학교 수준에는 꼭 필요하다.
그리고는 생각보다 일찍 출장이 마무리되어 보너스받은 기분으로 10월의 마지막 날을 즐겨보기로 했다.
날씨가 좋으니 가능한 일탈이었다.
중구는 중구청이나 중부교육지원청이 엄청 가깝다는 좋은 점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고궁들이 있다.
어디를 갈 것인가 구체적인 생각도 없이 그냥 걸었다.
청계천을 옆에 두고 광장시장과 방산시장을 지나서
관광온 외국인들과 그곳이 삶의 터전이 사람들이 반반씩 섞여있는 곳들을 걷는 한가로운 늦은 오후였다.
고개를 들어 이정표를 보니 창경궁과 창덕궁이 보인다.
둘 중에 어느 곳을 갈까하다가 창경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실 두 곳은 궁 안에서 이어지게 된다.
창경궁은 나에게는 창경원이라는 이름이 더 강렬하다.
어려서는 아버지와 동물을 보거나 놀이기구를 타러 갔던 곳이었고(물론 아주 가끔이었었다)
기억은 선명하지는 않지만 목마도 타고
케이블카도 탔던것 같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밤벚꽃놀이를 가야만 할 것 같은 곳이었다.
대학 1학년이 되어서 아직은 꽤 쌀쌀한 날이었는데
과 친구들이 창경원에서 밤벚꽃놀이를 하면서 Y대와 단체 과팅을 하자고 했었다.
아홉시가 귀가 시간이었던 기숙사 같은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딸 부잣집이라 분위기가 그랬다.)
부모님께 그 말을 하려다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매일 매일 눈치만 보았었다.
결국은 “여자가 밤늦게 어디를 돌아다니냐”고 싫은 소리를 듣고서야 마지못해 포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 날 학교에 갔더니 킹카들이 많이 나왔던 만족스런 미팅이라면서
참가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환해졌던 기억이 있다.(몹시도 부럽고 분했었다.)
그런데 아직 꽤 추웠던 3월 말 이쁘게 입는다고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녔던 친구들은 대부분 감기에 걸려서 한동안 콜록콜록 거렸었다.(그때는 그것조차 부럽기 짝이 없었다.)
그날 나갔더라면 나의 일생은 바뀌었으려나.
창경궁으로 변한지 이미 오래인 그곳을 한바퀴를 크게 돌았으나
예전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았고(지극히 당연하다만)
입구의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한 몸으로 이어진 연리목의 신기함과(책에서 읽었던 기억은 있지만 직접 본것은 처음이라 위에 실어보았다.)
아직은 단풍이 반만 들은 나무들과 새소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서울 한 복판인데 소음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새소리가 그리 꾀꼬리처럼 들리다니
1,000원의 입장료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고궁을 한 바퀴 돌고 나오니 인연이 제법 있는 서울대학교병원이 길 건너이다.
종로쪽으로 갈까하다가 병원을 가로질러서 혜화역으로 퇴근길 경로를 잡았다.
조금 돌아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오랫만에 그곳을 걷고 싶었다.
그곳의 치과에서 대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스켈링이란것을 받았었다.
안그래도 치과치료란 무섭기 짝이 없는데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아 보이는 초짜 인턴에게
처음으로 스켈링을 받는 그 시간은 정말 길게만 느껴졌었다.
초보 환자인 나도 벌벌 떨고 초짜 인턴도 벌벌 떠는 느낌이 확연했다.
지금도 나는 스켈링을 무서워한다.
모든 일은 그래서 첫번째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는 박사논문을 쓰다가 혈압이 너무 높아져서 그곳에 며칠 입원하기도 했고
자궁근종으로 두 번의 수술도 했고(6개월만에 두 번의 수술이라니 너무 타격이 컸다.)
그 이후로 엄마 친구 아들인 가정의학과 교수에게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상담도 하였다.
그때 기억에 남는 처방은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당시 통통했던 나에게 그리고 학교일과 육아로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나에게
한심한 표정으로 운동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거라고
엄마 친구 아드님은 일침을 놓았었다.
또 그 곳에서 S대 의대 출신이면서 부산의 유명한 내과의사셨으나
자신의 간암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고모부의 안좋으신 얼굴을 마지막으로 뵈었었고
아침을 드시고 갑자기 돌아가신 시아버님을 보내드렸었다.
(그때는 충격이었으나 지금 생각하니 고생 많이 안하시고 가신 것이 행복이었다 싶다.)
10월의 마지막 날.
창경궁을 돌고 서울대학교병원을 거슬러 혜화역까지 천천이 거닐면서
추억을 떠올렸던 오늘은 행복했고 따뜻했던 날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 아직도 자리하고 있는 공식적인 내 첫사랑.
그도 이제는 많이 늙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흑백 무성 영화에서 본 것처럼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서울대학교병원에 오는 일은 가급적 없기를 희망하지만(좋은 일이라고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와 함께였던 정문 옆 낡은 건물의 미술반 동아리실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렇다.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은 설레지만 옛 추억의 길을 걷는 것은 가슴을 먹먹하게도 만든다.
(이번 주 가을을 흠뻑 느끼느라 너무 많이 걸어다녔나보다. 어젯밤 자다가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쥐가 나서 한참을 부여잡고 쩔쩔매다가 아들 녀석한테 한소리 들었다. 자기가 사다준 마그네슘은 매일 복용하는거라고. 단 오분만에 중환자 모드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