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95
기후 위기 못지않은 요즈음 중3 위기
월요일 3학년 수업은 외부 특강이었다.
여러 기관이(무려 대기업 한 곳, 시민단체 한 곳, 공공기관 한 곳이다.) 협업한 기후 위기에 대한 특강이다.
한 학급에 두 시간씩으로 구성이 되어서 과학 1시간에 다음 시간 1시간을 빌려서 운영하였다.
물론 3학년은 기말고사까지 다 마무리하고 전환기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중이니 실현가능한 형태이다.
출근하자마자 3층 과학실 난방을 틀어놓고 전자칠판 준비하고 외부 강사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일찍 오신 강사님과 우리학교 학생들 특징도 알려드리고 지루하지 않게 활동 중심의 수업을 진행해달라고 신신당부를 드렸다.
영상보고 강의 듣고 하는 형태의 수업은 아무리 유명 강사가 온다해도 지속가능한 수업 방법이 아니다.
특히 이 시기의 중 3을 대상으로는 말이다. 중3이 이런데 고3 교실은 어떻겠나 상상 이상일 것이다.
고3 은 모르겠다만 중3 의 진학 업무 매뉴얼은 2주 정도 뒤로 미뤄도 될듯하다.
행정편의주의 말고
학교 수업 정상화를 우선한다면 말이다.
놀랍다.
상담 활동을 주로 다니신다는 외부강사님께서는
발표 수업의 형태로 두 시간을 꿋꿋이 이끌어나가시더라.
발표 수업이라는 형태는 사실 나도 잘 적용하기 어려운 가장 고차원 형태의 수업 방법이다.
관련 내용을 학생들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고
학급 학생들이 서로의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창피해하거나 우물쭈물하지 않아야 할 정도로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며
교사의 노련함과 반응없음과 소리없음에 대해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필요한 방법이다.
학생들의 발표 목소리는 모기 소리가 되기 쉬우며
같은 모둠에서 서로에게 발표를 미루기 쉽고
내용이 거기에서 거기인 모양만 발표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비슷한 내용의 도돌이표가 된다.)
따라서 나는 중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한번 정도 조별 발표 수업을 시도할뿐.
거의 하지 않는 방법이다.
일단 침묵의 시간이 불편하고 기다려주어야 하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이 수업 방법은 발표 점수를 부여하는 대학생 대상으로나 원활하게 진행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제대로 발표를 한다.
아마 기후 위기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작년부터 했었기 때문에
이미 머리 속에 들어가 있는 관련 내용들이 꽤 있는 것 같고
자신의 경험담과 실천 사항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많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보다.
발표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마냥 대견하기도 하고
내가 너무나 그들의 역량을 낮게 평가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자기 반성도 느껴졌다.
비록 1~6교시까지 모두를 케어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리고 다음 주 한 번의 활동이 더 남아있지만(다음 주는 만들기 활동이 주가 되니 오늘보다는 더 나을 것이다.) 이정도면 만족이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해줄 수는 없다.
나와 다른 능력이 있는 분들이 내가 못하는 빈칸을 채워주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이루어지게 수업을 구성하면 된다.
기후위기에 대한 다양한 기관에서의 교육 자료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 단위도 있고 관련 지자체도 있고 NGO 단체들도 있다.
비슷 비슷한 내용을 각각의 많은 예산을 들여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강사를 교육시키고 활동을 준비하는데
정작 그 활동을 실현해야하는 학교는 시간이 없다.
중3의 이 시기가 아니면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내년부터는 자유학기제도 그렇게 시간의 여유가 있지 않다.
만들어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교육 프로그램처럼 아까운 것은 없다.
마치 만찬을 차려놓았는데 손님이 안오는 노쇼 상태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나는 외부강사를 맞이하랴 학생들에게 안내하고 조용히 시키랴
내부 결재 맡고 다른 교사들의 협조를 받으랴 내가 수업하는 것보다 다섯배는 더 동분서주해야 하지만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 또한 나의 몫이라 생각하며 바쁜 월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 날의 외부강사님께는 점심 학교 급식을 내돈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작은 보답을 해드렸다.
내년부터는 나도 그 외부강사와 같은 강의를 진행하는 프리랜서가 될 지도 모른다.
세상 일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말이다.
(오늘 강사님은 이론 주입식 강의위주이다. 영어와 반말을 섞어가면서. 아뿔싸! 요새 학교를 너무 모르신다. 내 나이 또래이다. 강사가 이리 중요하다. 강사의 역량에는 수업 스타일이 포함된다. 수업은 학생과 함께 만들어나가는것이다. 그런데 꼭 나이 문제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