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배우는 인생 단면
사람은 행동하는 바가 다 다르다.
지하철 출퇴근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올해부터이다.
그간에는 출장이나 특별한 일이 있으면 지하철, 아니면 자차 출퇴근이었다.
점점 나이들면서 운전하느니, 운동 삼아 지하철역까지 걷고, 역 계단도 오르락 내리락 하고
들어오는 길에 시장도 보고 주위의 꽃도 살펴보는 내 나름의 PT이자 산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꽤 걸어다니니 하체 훈련도 되고 근력도 유지되고
시장을 보거나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힘을 주면 전완근 훈련도 되니 말이다.
그런데 체력 훈련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여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마치 행동심리학의 사례연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때 그때 상황을 간단하게 기록해두기도 한다.
오늘 출근길 상황이다.
지하철을 타는데 비어있는 한 자리가 보인다.
나보다 앞에 탄 남자가 그 자리에 앉을 것처럼 그쪽으로 다가간다. 천천이... 그런데 앉지 않는다.
나라도 앉을까싶어 그쪽으로 다가갔는데
반대편에 있던 해맑은 얼굴의 이십대 아가씨가 나를 밀치고 그 자리에 앉는다.
다음 역에서 그 옆자리가 비어서 결국 나는 앉았고
반대편 자리에 그 천천이 움직이던 남자도 앉았다.
그럴거면 천천이 움직이는 저 남자는 왜 처음 그 자리에 앉지 않은 것일까?
그 마음과 행동을 영 가늠할 수가 없다.
나를 밀치고 자리를 차지한 내 옆자리의 아가씨는 이제 나에게 기대어 졸고 있다.
내가 내릴때까지 안내리고 졸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자리를 꼭 차지해야만할 당위성과 개연성이 조금은 있어 보인다.
지난 주말 지하철, 군 생활을 마치고 막 제대한 조카녀석에게 밥을 사주려고 나선 길이었다.
평소처럼 나의 최애 <최강야구> 유투브를 돌려보면서 가면 목적지까지 순삭이다.
물론 이긴 경기, 신나는 경기만 계속해서 돌려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옆자리를 보다가 깜짝 놀랬다.
강아지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다행히 짖어대지는 않는다.
성대 수술을 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무섭게 보이지는 않는 것일까?
여하튼 강아지보다 내가 더 놀란 것이 틀림없었 보였다.
주인의 큰 가방안에 앉아있던 그 강아지는 제법 지하철에 익숙해보였다.
그리고 그 주인은 엄청 당당했다.
물론 입마개는 하지않은 강아지였고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는 있지만 강아지는 무서워라한다.(어려서 여러번 물릴뻔했던 도망다녔던 트라우마가 아직도 있다.)
어느 날인가 출근길 내 옆자리에 로맨티스트 중년 아저씨가 앉았다.
건대입구역에서 을지로 4가역까지 쉬지 않고 다정스럽게 한 여자와 통화중이다.
여자인지 어찌 아냐고? 받는 사람 소리가 다 들린다.
여자 목소리에는 졸음이 묻어난다.
대답만 간신히 하는 듯한 목소리이다.
그래도 괘념치 않고 다정이 뚝뚝 넘치는 통화를 이어간다.
지하철에서는 급한 용무만 처리하는 무뚝뚝한 사람이 좋다는것을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하철 임산부석 두 자리 모두 젊은 남자가 앉아있는 신기한 날도 있었다.
둘 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 게임 삼매경 중.
아무리봐도 아프지도 않고(아픈 사람이면 그래도 이해해주려했는데) 멀쩡해보인다.
임산부석 만든지도 한참 된 것 같은데 눈이 나쁜 것일까? 저 표시의 의미를 모르는 것일까?
임산부석 자리 표시를 더 진한 핑크로 칠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너무 연한 핑크이다.
눈빛 레이저를 쏘아주었으나 아무런 효과는 없었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일은
이번 역에서 꼭 내릴것처럼 입구를 막고 있다가
안내리고는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모르는 표정으로 서 있는 사람이다.
이번 역에 안 내릴 거면 한발 더 들어가 주던가, 입구래도 비워주던가, 사람이 많으면 내렸다가 다시 타던가
왜 이런 기본적인 생각을 못하는 것인지
이런 교육을 구체적으로 시키지 않은 학교 잘못인건가도 싶다.
청소도 에티켓도 모두 다 학교 책임이라니
교사는 힘들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이렇게 인생의 단면을 보기도 하고
어설프게 사람 관상을 보기도 하고
에티켓 없는 사람들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러다가 한강을 지날때쯤에는 멋진 풍경과 만나기도 한다.
그나저나 이번 주에 지하철 파업이 예고되었다는데 그런 일은 정말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
지하철 출퇴근이 이렇게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을 느끼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인데 말이다.
(오늘은 밴드반 동아리 연습하고 냉삼먹이고 추가연습하느라 지금 퇴근길 지하철이다.
네시반 칼퇴 지하철과는 또다른 분위기가 있다. 심오한 관찰중.
금요일 오후 다섯시 이후 지하철은 터지더라. 간신히 탑승해서 관찰 불가능. 간신히 숨만 쉼. 지하철세상도 이리 다양하다.
지금은 주말 아침 탑승중 내가 전세냈나 놀라고 있다. 다들 주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