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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Dec 06. 2024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03

삼겹수육과 냉삼을 하루에 먹다니

어제는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힘든 초과근무날이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기도 하고(다음에 그 내용에 대해 쓸 마음이 생길지 아직은 모르겠다.)

스케쥴 자체가 빡빡한 날이기도 했다. 덕분에 밤잠을 푹 잤는지도 모르겠다만...


먼저 아침 다섯시부터 삼겹수육을 삶았다.

도시농부 동아리의 1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김장체험일이다.

김장만 담을까하다가 김치 담는 날의 즐거움 수육을 몇 점씩이라도 맛보게 해주는게

학생들의 기억에 오래남을 듯 하여 삼겹살을  다섯 덩어리 정도 삶았다.

조그만 한 덩어리는 아들 몫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12명의 도시농부 동아리 학생 몫으로 학교에 가져가 냉장고에 일단 보관해두었다.

학교 뒤편 텃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쪽파와 부추 등을 모두 수확해 와서 잘 씻고

배송된 절임 배추를 씻고(이미 손이 차갑다고 난리다.)

그 근처 최고의 반찬 가게에서 주문한 김치 양념을 준비하였다.

김치 양념까지 모두 만드는 것은 2차시 분량의 동아리 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학생들 역량에도 미치지 못한다.

직접 기른 쪽파와 부추등을 김치 양념에 함께 버무리는 정도가 딱 맞는다.(다년간의 경험에 의한 것이다.)

김치는 손으로 쭉쭉 찢어서 겉절이 형태로 만들었다.

양념에 버무리다가는 옷에 김치 양념을 잔뜩 묻힐 것이 뻔해서

커다란 지퍼백에 겉절이용 배추와 쪽파 및 부추를 잘라서(가급적 칼을 쓰지 않는다. 꼭 다치는 사람이 나온다.)

본인이 희망하는 만큼만 넣으면(김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학생도 있다.)

내가 양념을 적당량 눈대중으로 넣어주고

학생들은 그 비닐팩을 꼭 닫아주고 살살 돌려가면서 양념이 푹 배이게 만들어준 후

구입해준 미니 김치통에 담아서 집에 가져가는 시스템으로 진행했다.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진행해도 개수대에는 흙과 쪽파 다듬은 것이 한 가득이고

깔아둔 신문지에는 손으로 찢다가 놓친 배추 조각이 나뒹굴고 있고

가사실에서 빌린 앞치마는 자꾸 돌아다니게 된다.

남은 양은 내가 직접 양념과 버무려서(나도 옷에 많이 묻혔더라. 꼭 티를 낸다.)

아침에 삶아온 수욕을 무수분으로 다시 냄비에 뎁혀서 조금씩 맛을 보았다.

배불리 많은 양을 먹지는 못했으나(식사가 아니다. 맛보기 수준이다.) 입맛 다시기와 김장 체험에는 딱이었다.

학생들은 너도 나도 사진을 찍어 위 사진처럼 인스타에 올리며 자랑을 하였고

다른 동아리 학생들의 부러운 시선을 즐겼고(가끔 이런 날도 있어야 농사를 짓는거다.)

이후 학교 축제에서 운영할 미니햄버거 만들기 자료 수집에 열심이었다.

내 몫의 김치는 냉장고에 두었다가(어제는 집에 일찍 갈 수 있는 스케쥴이 아니었다.)

오늘 아침에 편의점에서 산 잘 구워진 속노란 고구마에 올려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저녁에는 아들 녀석에게 어제 수육과 함께 올려주었더니 오랫만에 쌍 따봉을 날려주었다.

양념 맛이 최고였고 쪽파가 신선한 고유의 맛을 풍겨주었다.

이 맛에 텃밭을 하고 김치를 담아먹는 것이 맞다. 첫번째 미션은 클리어했다.


그리고는 밴드 동아리의 버스킹 대비 연습을 지도하고 학생들과 함께 오래전에 약속한 냉삼을 먹으러 나섰다.

밴드반이 총 15명이다.

학교 주변의 음식점을 검색해도 값이 저렴하면서

15명이 6시에 들어가서 그 음식점에 피해를 주지 않을(비싼 요리를 못 먹으니 말이다.)

그런 음식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간신히 한 곳을 찾아 예약을 하고 간 음식점에서도

한창 먹성이 꽃피울 청소년기 15명의 배를 충분히 채울만큼의 냉삼을 주문해줄 수는 없었다.

학생용 식사비 8,000원(물론 나의 특근 매식비도 8,000원이다.)으로는

냉삼 1인분 7,000원에 공기밥 1,000원을 주문하면 끝이다.(이 가격의 식당도 찾기 힘들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내 돈으로 테이블당 콜라와 사이다 1병씩과 냉삼 3인분씩을 추가해주었지만

간에 기별만 살짝 간 정도인 듯 했다.

그런데 다같이 아쉬워하던 그 순간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미리 계산을 하면서 학교 카드와 내 카드로 나누어 계산하는 내가 안되보였는지

아니면 배고파하는 학생들이 안되어 보였는지

내 또래 나이의 사장님께서 테이블당 2인분씩의 냉삼을 서비스로 주시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환호했고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아마도 아이들은 다음에 부모님과 그 곳을 재방문 할 것이고(어제의 좋았던 기억으로 말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 먹어서인지 맛이 끝내준다했고

나는 오늘 학교에 가서 회식 장소로 그 식당을 적극 추천했다.

역시 아이들은 인스타에 또 사진과 영상 숏츠를 올려댔고 반응은 뜨거웠다. 아마 그 식당도 태그했을 것이다. 홍보가 조금은 되었을라나.

그리고는 다시 힘을 내서 한 시간 쯤 연습을 추가해서 하고 귀가하였다.

덕을 베풀면 복이 오는 것이라고 배웠다.

아직 나에게 오는 큰 복은 없지만(큰 어려움만 몰려온다.)

이런 소소한 행복은 있기에 몹시 피곤했지만 기분 좋은 하루 마무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랜만에 먹은 냉삼과 같이 구워먹은 콩나물의 조화가 맛있었다.

아무리 사장님이 보너스를 주셔도 맛이 없는 식당은 추천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식당은 맛이 우선이다. 그 다음이 친절과 분위기?

그러고보니 하루에 삼겹수육과 냉삼을 모두 먹은 날은 언제였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번째 미션도 냉삼집 사장님 덕분에 클리어했다. 그걸로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맛있게 먹은 것은 먹은 것이고 피곤한 것은 피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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