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02
엑셀과 티처블머신 연습하기
지난 주 수업을 되돌아본다.
이제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돌이킬 수도 없는 일주일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3학년은 기후 위기 특강을 마무리했고
만들었던 기후 위기 지구본도 1주일 동안 전시했다가 정리했고
이제 원서 접수와 결과발표까지 다 끝난 3학년 특성화고 안내 포스터들도 모두 정리해서
축제 대비 깨끗한 정리 공간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포스터를 붙이는 것보다
홍보 시기가 지난 후 깨끗이 떼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시작도 물론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훨씬 더 중요한 법이다.
나는 이제 40여년의 내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다.
시기 지난 포스터를 붙였던 흔적없이
말끔하게 떼어내기를 하는 것과 같은 과정중이다.
2학년은 저항의 직렬과 병렬연결 및
자기장과 자기력선에 대한 기본 수업을 진행했다.
저항의 직렬과 병렬연결은 지난 일주일 열심히 연습을 해서 금요일에 수행평가를 보았고(이제 학생들은 제법 전기회로 연결에 능숙해졌다.)
회로도도 기호로 그려보았으니 웬만한 전자제품의 회로도를 보면 무엇인지 대충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꼬마전구이거나 멜로디폰이거나 니크롬선이거나 다른 전자제품 어느 것도
모두 회로도에서는 저항으로 표시된다는 것만 기억하면 될 것이다.
내 생각보다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은 철가루를 이용한 자기력선 만들기 활동이었다.
사실 막대자석, 말굽자석, 철가루는 초등학교에서 모두 관련 실험을 마치고 올라오는 법인데
새삼스럽게 막대자석과 말굽자석에서의 자기력선 모양은 처음 보는 내용이어서인지 즐겁고 신기해했다.(어렵지않다는 점이 좋았을것이다.)
너도 나도 좋아라하길래 마지막으로는 창의적인 자기력선 작품을 만들어보라했더니
하트도 만들고 스마일 얼굴도 만들고
새가 날라가는 모습도 만들고
조별로 다양한 취향을 나타냈다.
과학과 미술의 콜라보라 생각하니 의미도 있었고 다른 조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금요일에는 융합과학동아리 대상으로 한 나의 마지막 특강이 있었다.
사실 1학년때부터 나와 같이 다양한 활동을 한 녀석들인데(1년에 20개쯤은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학교 생활을 마치게 된다.
어찌보면 우리학교 2025년 졸업 동기생이다.
어떤 내용의 특강을 해줄까 하다가 고등학교에 갔을 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집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명 족집게 특강이다.
먼저 수업 준비물로 신청한 USB에(양쪽으로 각각의 타입을 선택할 수 있는 최신 제품이다. 수업 후 기념품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했다.)
우리학교 3년간의 방과후활동에 대한 간단한 데이터를 넣어주었다.
그 데이터로 방과후학교 운영 분석을 하고 데이터 시각화를 연습해보는 것이 첫 번째였다.
고등학교 뿐 아니라 대학 그리고 직장에 가서 가장 필수적인 능력 중 한가지는
데이터 분석과 그 분석 내용을 반영한 시각화자료 만들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엑셀을 이용하여 그래프를 그렸고
서로 모르고 있었던 엑셀의 기능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그래프와 비교해서 더 알기 쉽게 나타낸 것을 판단하기도 하고
서로의 분석 결과를 발표해보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가기 전의 이 중요한 시기에 엑셀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연습을 하라는 당부를 했다.
두 번째로는 티처블머신 연습을 하였다.
간단한 이미지 학습을 이용해서 평소에 구별하기 어려운 것들을 판별해낼 수 있는 AI 도구가 티처블머신이다.
먼저 연습으로 강아지 그림 10개와 고양이 그림 10개를 그룹핑하여 학습시켜보았다.
그리고 나서 판별 대상 그림을 웹캠으로 찍으면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를 확률적으로 판별해 주는 시스템이 티처블머신이다.
일단 나는 고양이상 확률이 높은 것으로 판별되었다.(요새 늙고 말라서 얼굴이 뽀족해졌나보다.)
그러나 웹캠을 어느 각도에서 얼마만큼 가까이서 찍느냐에 따라 그 확률은 변화가 있다.
모든 것은 확률 싸움이지 절대적인 것은 많지 않다. 무엇도 절대적이라고 신봉해서는 안된다.
그후에는 자신만의 주제로 티처블머신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주었다.
평소에 판별이 어려운 주제를 선택하라 하였더니
눈으로 보기에는 비슷해보이는 까마중과 쥐똥나무 열매를 구별하는 것을 주제로 만들거나
화산암에 속하는 안산암과 유문함을 구별하는 것을 주제로 만들기도 하고
미남과 추남을 구별하는 것이나
특정 연예인과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것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셀프캠을 찍어서 판별해보니 추남군에 속한다고 절망하기도 했으나 그걸 지켜보는 우리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간단한 티처블 머신의 기법을 익혔으니 이제 본인의 노력에 따라 심화의 정도는 달라질것이다.
그리고는 특강수업이 끝난 후 그들에게 돈가스를 사주면서 당부했다. 물론 내돈내산이다. 강사료를 안받은것으로 치면 된다.
<무엇이든지 어떤 프로젝트던지 너무 주제를 크게 잡으면 안된다.
아주 구체적이고 작은 주제부터 도전해라.
그리고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가라.
제일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해서 제출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일이다.
일단 오늘 한 만큼만 선생님이든 상사이든 선배이든 보여주고 코멘트를 받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방향성이 맞는지를 체크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중요성을 그들이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꼭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남학생들에게는 당장 내일 있을 학교 대항 농구 시합이 더 중요했고
돈가스는 양이 많아서 배가 너무 불렀고
내 이야기는 너무 꼰대같았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나의 마지막 당부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으리라 기대한다.
마지막 융합동아리 활동은 2주 후 서울대로 특강을 들으러 가는 것이다.
내가 그들과 하는 공식적인 수업은 모두 끝났다. 수고 많았다. 나의 공식적인 마지막 영재들이여.
아 참. 그들 중 한 명은 과학고에 합격했다.
이제 진짜 고생길이 열렸지만 우선은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