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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Dec 08. 2024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04

옛날 과자 꾸러미가 주는 힘

2주만에 두 번째로 티눈 치료를 나섰다.

2주 전에 재방문일 경우 병원비가 엄청 비싸 진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셔서(먼곳이라 그 사이에 방문은 어렵다.)

딱 2주일이 되는 날 아침 일찍 진료를 받으러 나섰다.

진료는 10시인데 9시반부터 접수를 받으니 그 시간에 맞추었다.

피부 질환을 봐주는 병원이 많지 않아서 환자가 많고

의사는 단 한 분이고 꼼꼼이 의사 선생님이 모든 처치를 다 하느라

이리 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이 시대에 보기드문 진정한 의료인이다. 

두번째라 덜 무섭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덜 아픈것은 아니다.


진료를 마치고 나니 11시.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마침 아들 녀석의 조기 축구 종료 시간과 맞아서

발가락이 조금 아픈 나를 데리러 와준다고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고맙다.

백화점 지하 푸드 코트에서 간단히 먹고 집에 가렸는데

아들 녀석이 갑자기 우리의 소울푸드였던 그 식당에 가자고 하는 거다.

물론 오케이다. 혼자 갈 수 없어서 가고 싶어도 못갔던 곳이니 말이다. 

안가본 식당은 혼밥이 가능한데  늘상 누군가와 함께였던곳은 혼밥이 힘들다.

나만 그런가?

오랜만에 그 맛을 맛볼 생각에 군침이 돌았는데 가보니 오픈 시간이 11시 30분이랜다.

어찌할까 하다가 근처 서점에서 시간을 떼우고 오픈런하기로 했다.

꼭 사야할 책이 있는 것 아니지만 어정쩡하게 시간이 남을 때 가면 좋을 곳은 역시 서점이다.


오랜만에 서점에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다보니(책을 봐야는데)

한쪽 모서리에 옛날과자를 파는 곳이 있는거다.

무엇에 홀린 듯 나는 그곳으로 갔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쭈욱 좋아하는 캐러멜과 고구마과자, 소라과자, 땅콩, 튀밥과자 등을 기쁜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책은 사지 않았다. 신간 서적을 보기만 했다.)

그 과자들과 함께 였던 시기를 추억하는 것은 덤으로 따라온다.

캐러멜은 아마도 일본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사오셨을 것이다.

형제끼리 나누어 먹으면 내 몫으로는 아마 두어개가 겨우 배당되었을 그 입에서 살살 녹는 캐러멜.

이에 달라붙는 그 느낌까지도 눅진하며 맛있었다. 이제 우리나라 브랜드에서도 나온다.

고구마와 소라과자는 신용산역에 살때까지 나와 아들의 최애 과자였다.

그 편의점에서만 팔았던 옛날 느낌의 브랜드가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곳에도 없다.

혹시 하고 샀으나 역시 그 맛은 아니었다.

땅콩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저 커피땅콩만 홀릭하고 있다.

커피맛이 진하게 나지는 않는데 그 맛이 땅콩 특유의 냄새와 기름을 잡아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튀밥과자 종류는 대부분 좋아한다.

어려서 튀밥과자를 물고 찍은 사진이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요새 튀밥과자를 사려면 대부분 대형 사이즈여서 아주 가끔 길거리 트럭에서나 구입하고

학교가서 풀어놓고 먹는 정도였는데 이곳에는 작은 사이즈가 있었다. 집에 와서 순삭했다.

작은 매장을 두 번이나 돌았으나 끝내 동그랗고 안에 팥앙금이 들어있는 과자는 찾지 못했다.

이름은 잘 모르겠다. 아쉽다.

뿌듯하게 과자를 한 아름 들고 찍은 사진을 막내 동생에게 보냈더니

<좋겠다. 나는 혈당 걱정하느라 과자 못먹어.> 이렇게 답이 왔다.

저 과자 하나를 놓고 치열하게 눈치싸움하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옛과자를 가득 들고 오랜만에 나와 아들의 목동 소울푸드인 해산물오일파스타와 씨푸드라이스를 먹었다.

신기하지도 않은 메뉴인데 왜 소울푸드인지는 당연히 맛 때문이다.

그 맛은 여전한데 음식의 양은 조금 줄은 것 같았고(물가가 올랐으니 당연하다.)

줄 서서 대기하고 먹던 식당인데 주말인데 여유있는 좌석이 이상하게 보였고

젊은층이 대부분이었던 곳인데 이제는 나이든 분들이 많아진 것에서도

그리고 홀 매니저도 그때 그분인데 이제는 제법 나이가 드신걸로 보여

밥을 먹으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또한번 느끼게 되었다.

나처럼 옛날을 기억하기 위해 오는 방문객이 많은듯하다.

처음 이 집의 음식을 먹었을때의 기쁨이 생각난다.

특별한 메뉴는 아닌데 불맛이 적당히 나고 양념이 가볍지 않고(다른 말로는 표현이 안된다.)

간장 베이스인데 고유한 감칠맛이 있다.

파스타 종류를 마냥 좋아하는 것은 아닌 내가 먹어도 말이다.

그리고 어제 아들 녀석에게

귀하디 귀한 새 여자친구 이야기도 듣고(이야기를 잘 안해준다.)

스파게티면을 잘 마는 비법도 배우고(숟가락에 기대서 면을 능숙하게 돌리는 방법이 늘 부러웠다.)

우리에게 당면한 큰일을 잘 헤쳐 나가자는 의기투합 파이팅도 하는 브런치 시간을 보냈다.

위기가 오면 전우가 되는 법이다.

그리고 전쟁에는 밥심이 중요한 법이다.

무슨 전쟁인지 글로 쓸 마음의 준비는 아직 안 되었지만

옛날 과자들과 어제 점심의 든든함으로 최소한 주저앉지는 않으리라.

다시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일주일의 무게는 아직 가늠조차 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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