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11
크리스마스에 흰 죽을 먹는 이유
주중에 하루 쉬는 날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오늘은 아마도 저녁부터는 대장 내시경약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물에 타먹는 액체 상태 약이 아니고(이것은 보험처리되어 만원대란다.)
보험이 안되지만 알약으로 된 내시경 대비 뱃속 비우기 약을 선택했다.
4만원대이고 28알을 오늘 밤과 내일 새벽에 먹어야만 한다. 벌써 목이 막혀오는 듯 하다.
3만원 정도의 역할을 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액체 약은 메슥거림을 불러오는 향이 있다.
알약 한 알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해본다.
따라서 오늘, 휴일이지만 맛있는 것을 먹는 특식은 불가능하다.
성탄절인데 너무 하다.
그러나 성탄절이어서 그나마 가능한 일정이니 다행이다.
오늘 아침은 버섯 크림 스프와 토마토 야채 스프 레토르 하나씩을 뎁히고
달걀, 우유 섞어서 핫케잌 두 장 굽고
사과와 메이플 시럽 올려서 먹었다.
나의 고양이 설이에게는 열빙어 특식을 주었더니 몹시도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점심에는 오랜만에 아들 녀석과 백화점 나들이를 할까 생각중이다.
나는 건조한 입술을 위한 립글로스 하나 사고
내일 나의 위와 대장 내시경 픽업을 담당해주기 위해 반차를 선뜻 내준 아들 녀석에게
작은 선물(뇌물인가?) 하나를 해줄까 한다.
너무 비싼 것을 고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만 눈이 높다.
그리고 맛있고 야채 많이 안 들어있는 점심을 특식으로 먹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저녁은 흰 죽이어야만 한다.
엄마가 해준 그 많고 많은 음식 중 기억에 나는 것 하나는 흰 죽이다.
아플 때마다 오랫동안 불앞에 서서 정성껏 흰 죽을 끓여주셨다.
죽 전문점이 생겨나기 이전, 흰 죽은 그야말로 정성 쏟은 요리의 표본이었다.
흰 죽에 짭조롬한 소고기 장조림 국물과 장조림 한 조각이면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디저트로 황도 통조림 한 조각이면 아파서 서러웠던 감정이 모두 사라지곤 했다.
아픈 사람만 맛볼 수 있는 특식이었던 셈이다.
때때로 아픈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기도 했었다.
단지 그 흰 죽 때문이었다.
오늘 나의 저녁은 엄마의 환자 특식 그대로이다.
그리고는 대장 내시경 약을 먹어야하니 오랫동안 그 음식 맛을 음미하기는 어렵겠다만...
나는 먹지 못하겠지만
온전히 남편과 아들을 위해서
버섯을 굽고 고기를 해동하고 있다.
샤브샤브 형태로 할지 불고기 형태로 할지는 고민중이다.
(지금 방금 간장 양념 조금하고 깍둑 스테이크 스타일로 등심 잘게 잘라 버섯, 양파, 대파넣고 볶았더니 맛난다.)
자식에게 최선을 다했던
그렇지만 약간은 독설가였던 우리 엄마를
그래서 뒤에서 욕도 하고 삐지기도 했던
엄마의 그 성품을
내가 그렇게 빼다박을 수가 있나?
유전인가 환경요인인가는 알수 없지만
그런데 울 엄마의 그 이쁜 미모는 빼고 말이다.
닮으려면 가장 중요한 외모도 닮았어야는데 참 아쉽다.
세상은 아쉬운 것 천지이다.
그래도 오늘이 휴일이라 내일의 내시경 검사를 대비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남편이 위암고백을 한 그 순간부터
내 뱃속은 아프기 시작했으니
이 검사가 끝나봐야 나을것도 같다.
이 세상의 모든 검사는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그리고 그 검사를 앞두면 누구나 기도를 하게 된다.
그 대상은 모두 다를지언정...
모두들 기쁜 성탄절이 되기를 기원한다.
오늘이 내 생애 가장 젊은 성탄절이다.
(야호 아들 녀석과 오랫만에 백화점 쇼핑하고 태국음식 먹고 ; 나는 쌀국수조금에 국물만 먹었다. 그리고 식품코너에서 올 첫 도루묵을 샀다.
세마리는 굽고 세마리는 찌개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