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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생적 오지라퍼 Dec 24. 2024

나의 미소를 불러일으키는 아주 사소한 일들

미소는 주로 남에게서 나온다

다른 날과 똑같은 아침이었다.

소금빵 반 갈라서 달걀 스크램블 가득 넣은 아들 녀석 아침 도시락을 준비하고

내것은 그냥 소금빵만 챙기고(목요일의 위와 대장 내시경 대비 간단히 먹는 중이다.)

어제 먹으려했다가 남긴 사과와 바나나 그리고 우유 조금 넣어서 쥬스 만들어 한잔 마셨다.

그리고 나는 청소기를 누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집을 나섰다.

물론 지하철역까지 나를 데려다줄 버스가 올 시간과 맞추어 나왔지만

정말로 딱 맞춤으로 버스가 도착하면 미소가 살며시 새어나온다.

오늘은 어제보다 덜 춥고(레깅스 내복의 강력한 힘이다만)

지하철에서는 어제 방송한 따끈따끈한 <최강야구> 유튜브를 보면 학교까지 도착이 순삭이다.

게다가 아침 우유 조금의 영향으로 화장실에서는 벌써 내시경 대비 설사가 나오기까지 한다.

미소가 절로 난다.


2학년 아그들이 이번 주부터는 조금 시험 공부를 시작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식물의 광합성과 증산작용 복습 설명을 하고 남은 시간은 교실을 순회하면서 질문을 받고 있다.

핵심을 찌르는 좋은 질문이 나오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그러나 질문을 하는 학생은 극히 드물다.

질문을 하려면 그 내용을 잘 알아야만 한다.

내용을 모르면 허공에 떠돌고 구체적이지 않은 질문답지 않은 질문만 하게 된다.

따라서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은 그 내용을 숙지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토요일 서울대 특강에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 교수님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많은 영재들을 보아서 기분이 많이 좋았다.

그날 내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업무에 버벅거렸던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날쌘 예전의 실력으로

중구청에서 예산 지원을 해준 프로그램 결과보고서를 작성해서 결재 및 발송까지 일사천리로 완료했다.

한 학기 동안 고생하신 동아리 외부 강사님들과 방과후 강사님들의 수당 결재도 처리하고,

덕수제 전날 리허설 계획도 수립하고,

아카펠라 형식의 찬조 공연도 섭외하고,

예산 잔액도 확인하고 내년 예산계획서도 수립하고(내가 사용하지는 않는다만)

시험 문항 최종 검토까지 확인하고 나니

아직 죽지 않았다 느껴지면서 기운이 뿜뿜 생기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역시 나는 공노비 체질이다.

일을 착착착 잘 했을 때 기분이 좋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날이기는 하나 학교는 다른 날과 차이가 없다.

굳이 찾는다면 급식에 루돌프 모양의 달디 단 디저트가 나왔다는 정도이다.

올해는 아직 정식으로 캐롤도 못 들어본 것 같고

(남편의 항암 이슈가 정신적으로 피폐를 가져다 주었다. 길거리에서도 안들렸다.)

크리스마스 장식은 백화점에서 본 것 같지만 선물은 사지 않았고

집 안에 트리 장식은 사랑하는 고양이 설이가 온 이후로 하지 않았고(다 뜯어버릴 태세이다. 집중력이 뛰어나다.)

크리스마스카드라고는 대학 동창회에서 온 달랑

두 장 뿐이지만

그리고 다른 학교는 단축 수업이나 조기 퇴근 등의 이벤트도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 학교는 갈 길이 멀다.

아직도 꼬박 한 달이나 남았다.

(사실 나는 한 달 남았다는게 싫지만은 않다.)

그래도 그 와중에 귤 하나씩과 도너츠 하나씩을 나누어 먹으며 소박하게 미소를 지어본다.

학교에서는 무엇이든 맛있다. 

맛있으면 미소가 절로 난다.


오늘 가장 큰 웃음은 퇴근 직후에 이루어졌다.

우리 학교 야구부 아이들의 정보에 따르면 <최강야구>에 나왔던 원성준 선수가

개인연습을 하러 우리 학교 운동장에 나타난다고 했다.

오늘 정시보다 조금 늦게 퇴근을 했다.

다음 밴드동아리 연습일에 약속만 하고 못먹었던 수제 햄버거 집에 들러서 예약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 수제 햄버거집은 브레이크타임이 있어서 오후 5시가 되어야 문을 열기 때문에 퇴근을 늦추고 일을 하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학교를 나섰더니 원성준 선수가 러닝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조용히 후문쪽까지 뛰어오기를 기다렸다가 수줍게 사진 한 장 찍기를 청해보았다.

선뜻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 생애 이런 인증샷은 처음이다.

그리고 그 인증샷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본 것도 처음이다.

(지금 갑자기 하트가 쏟아지고 있다. 원성준 선수 덕분이다.)

생각보다 더 멋지던 원성준 선수의 2025시즌 파이팅을 기원해본다.

그리고 그 사진은 올해 내가 받은 유일무이한 크리스마스 선물인 셈이다.

사진 속의 나는 큰 웃음을 짓고 있다. 오랜만이다.

내 얼굴이 찍힌 사진을 보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그 얼굴이 웃고 있는 것은 더더욱 오랜만이다.


퇴근 길에는 햄버거 예약드디어 성공했고

내일 아침에 먹을 빵 샀고(성탄절 아침은 경건하게 버섯크림수프에 빵  찍어먹는것이  국룰이다.)

오랫만에 내 최애 산책길을 걸어서 퇴근했다.

겨울 퇴근 길 산책도 오랫만에 나를 미소짓게 했다. 아직 호수의 물이 꽝꽝 얼지는 않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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