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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특별한 성탄절 보내기

위와 대장 내시경을 준비하는 마음 자세

by 태생적 오지라퍼

남편의 위암 판정으로 덜컥 겁이나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신청했다.

배도 아픈 것 같고 변비는 늘상 달고 사니까 말이다.(남편은 그런 증상도 없었다.)

젊었을때 나는 왜 이리 소화기관에는 탈이 안나는 것일까 이런 건방진 이야기를 할때도 있었다.

늘상 걸리면 감기나 몸살이었지 배탈의 기억은 위경련 한번 뿐이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리고 배 아픈것보다 열나고 머리 아픈게 더 힘들다는 생각도 있었다.

잘먹고 살이 부쩍부쩍 찌니 소화기관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배가 아프면 살이 쭉 빠질텐데 하는 단순한 마음에서 였다.

그랬던 나에게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나에게도 삶의 무게가 내려 앉으면서

위가 붓거나 딱딱한 느낌이 나는 스트레스성 위염이 가끔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먹는 양은 줄고 맛난 것도 줄고 먹기 힘든것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라.)


변비는 10대부터도 나를 괴롭히는 고질병이었다.

엄마도 변비에 치질 수술 2회, 아버지도 변비에 치질 수술 1회, 나도 변비에 치질 수술 1회.

그러니 피할 수 없는 유전인 듯 하다.

대장의 운동성 기능이 약하다고 한다.

밥이 아니라 면 종류만 먹으면 금방 화장실가는게 힘들어지니

아팠던 치질 수술 이후로는 저절로 밥 러버가 되었다.

밥 잘 먹고 화장실 잘 가는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어쨌든 나는 내시경 준비를 하는 조금은 특별한 성탄절을 보냈다.


이번 주 내내 조금만 먹는 소식에 소식을 거듭했고

먹지 말라는 것을 가급적 피했으며(그래도 김치를 안먹을 수는 없었다. 평소 먹는 양은 1/3 수준으로 먹었다.)

성탄절 아침은 스프와 핫케잌 조금

점심은 아들과 백화점 나들이를 하고 쌀국수 아주 조금과 국물

저녁은 죽 아주 조금

이것이 즐거운 성탄절 하루 동안 내가 먹은 것들이다.

물론 아들과 남편을 위해서

가자미와 도루묵을 굽고 도루묵찌개도 하고

소화능력이 떨어진 남편을 위한 호박과 당근,양파 잘게 썰어 볶아주고

참기름 달달 소고기 무국도 끓였다.

요새 급 사이가 좋아진 아들녀석과 남편은 저 작은 당근 케잌도 한 입씩 나누어 먹었다.

나는 한 숟가락 먹지도 못했다만...


그리고 어제 7시부터 대환장 게임.

대장 비우는 약과의 사투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돈을 더 내고 알약으로 받아왔는데 무려 28알이다.

어제 저녁에 14알, 오늘 새벽에 다시 14알을 먹어서 내 장을 비워야만 한다.

그래도 그 이상한 향이 나는 물약보다는 참을만 했지만

물배로 배는 볼록하고

이십번은 족히 화장실 들락달락하느라 잠은 설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으로 출발을 기다리는 지금 현재 다행히 기운이 아주 없지는 않고 두통이 있지도 않다.

두통이 있으면 너무 힘들어진다.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도 안든다.

이것이 정상인지 모르겠다만...

그리고 물약으로 먹었을때보다 힘든 정도는 10% 정도 덜 한 것도 같다. 3만원의 힘이다.


아들 녀석이 요새 효도에 전념하고 있다.

아빠 첫 항암일에 월차를 내고 함께 가더니

오늘은 반차를 내고 병원에 갔다 나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미안하고 고맙고 한편 기쁘다.

내시경 후 수척한 몰골과 기력 없는 상태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처량하다.

어제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어제 백화점에서는 따뜻한 겉옷과 바지를 사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들과 같이 옷을 입어보고 고르고 사주는 그 시간이 많이 행복하기도 했다.

(삼년정도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병원으로 출발할 시간이 가까와온다.

이후 글이 이어질 수 있을까?

나는 병원에 갈 때 항상 마지막일 것 같은 비련의 여주인공 마음이 된다.


나는 어려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입에 마취제를 쏘아 혀와 기도가 쪼그라드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때가 가장 무서웠다. 그 이후로는 뭐 금방 잠이 들어서...)

무사히 귀가했다.

대학병원이 아닌 건강검진센터에서 검사를 하니 좋은 점이 있다.

깨고 나서 곧장 검사를 한 그 의사 선생님께서 사진을 보여주면서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준다.

물론 대장의 조그만 용종은 세 개 떼어냈다고 한다만...(배가 많이 아프지는 않은것으로 보아 큰 사이즈는 아닌듯 하다)

위가 깨끗하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둘다 아프다는 것보다는 백배, 이백배 나으니 말이다.

이번 주 제일 커다랗고 중요한 하나의 미션을 완수했다

물론 죽은 네 시가 되어야 먹을 수 있다.

오늘 다시 개인 일정을 보러 나서는 남편과

나를 위해 반차를 기꺼이 내준 아들 석과 함게

바나나와 방울토마토 갈아서 만든 쥬스를 나누어 마시고(동지 의식이 급발동하는 요즈음이다.)

어제 못잔 잠을 청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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