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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10

수업할 수 있는 날 D-20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제 위랑 대장 내시경을 필두로 한 건강검진으로 난생처음 공가를 사용했다.

공가는 공식적으로 결근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특별휴가, 연가도 아닌 공가는 건강검진이나 국가 행사에 동원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는데

나는 그래도 미리 수업을 모두 다 미리 하고 지장이 없도록 하였다.

아니다. 오늘 1시간 더 변동 수업을 해야 한다.

따라서 오늘 6교시는 1교시 부장회의, 5시간 2학년 수업이다.

풀로 꽉찬 하루지만 그래도 어디냐.

어제 일을 무사히 마무리하지 않았나?

(무사히인지는 조금 더 봐야한다.

오늘까지 배도 안 아프고 피도 안비치고 해야 한다.

어제는 피가 조금 나왔다.

치질 부위를 건드려서 나온 듯 하지만 걱정은 조금 된다.)


오늘까지 2학년은 식물 부분 정리를 하게 된다.

시험 문항을 아무리 정성껏 낸다고 해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학생들에게 해당 부분 정리 요약 내용을 설명하다보면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아하 이렇게 내용을 쓰면 학생들이 헷갈릴 수 있겠구나, 이렇게 바꿔야겠다. 등등

40년을 했는데도 반성과 후회와 이렇게 할 걸의 내용이 있다는 것은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어려움일 수도 있다.

다르게 말하면 교사가 갖는 무궁한 발전 가능성일 수도 있고 말이다.


어제는 서울대에서 신입생들에게 전원 글쓰기 과제를 부여하겠다는 기사를 보았다.

문장해독력 및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연습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이런 형태의 수행평가의 일환으로 과학글쓰기를 3년전부터 적극 활용하였다.

나로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서울대가 했다는 점에서 반갑기도 하다.

과학글쓰기는 국어글쓰기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다.

국어글쓰기에서 활용하는 형용사나 부사들을 가급적 배제한다.

팩트 기반의 글이 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글쓰기에도 마지막에는 이 내용을 가지고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적어준다.

또는 주어진 글을 보고 질문을 만들어내는 방법도 활용하였다.

과학글쓰기와 질문 만들기의 주제는 그 단원 마무리에 생각해볼 만한 생활 주제로 했고

검색은 태블릿으로 가능한 오픈북 테스트였다.


이런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서울대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도 있었고

고등학교 서술형 평가 대비라는 관점도 있었고

과학 내용을 찾는 것은 검색을 하면 되는데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까의 문제는

한번 고민하고 적어본 사람과 아닌 사람이 같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기반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더 시간이 많다면 그 내용으로 토론해보는 것이나 다른 사람의 글쓰기를 읽어보고 서로 비교해보는 일도 필요하다.

이화여대 과학교육과에서 과학논술 관련 강의를 할 때

자연계 전공이 아닌 타 대상들을 불러서 과학적인 논쟁 이슈에 대한 토론을 시켜 본 일이 있다.

자연계가 아닌 사람의 질문을 받아보는 일이 진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참 중요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에 대한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자연계끼리만 살 수는 없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일이 발전의 기본이다.

따라서 질문 만들기와 과학글쓰기 그리고 토론하기의 과정은 연계되어 진행되면 참 좋다.

그런데 학교에서 자주 사용하기에는 진도 문제가 분명 뒤따른다.

한 학기에 1번 정도는 활용해봄직하다.

요새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영어유치원 못지않게 책읽고 글쓰기 열풍이 다시 분다니 어쨌든 다행한 일이다.


내시경을 하고 온 어제 저녁 나는 아이들의 구글 클래스룸에 <네이처가 뽑은 올해의 과학사진> 링크를 올려두었다.

박테리아 사진부터 생쥐를 대상으로

사상 최초로 성체가 아닌 태아 조직 이식 수술을 한 생쥐 태아 사진,

거북이 등에 올라탄 갈매기 사진,

유성우 사진 들 중에서

내 눈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바위사이를 기어오르는 아메리칸 족제비의 해맑은 모습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라는데

처음 봤을때는 족제비의 해맑은 모습이 귀엽기만 했다.

그런데 설명에는 몇 번씩 기어오르고 기어오르다가 실패해서 결국 포기했다는 내용이 함께 있었다.

그렇다.

아메리칸 족제비도 미션이 있는 삶이구나.

세상 어느에게도 평안한 삶은 없구나.

모르는 사람이, 관심없는 사람이 봤을때나 행복하고 마냥 평안한 삶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이 사진으로 수업을 시작해보려 한다.

우선은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찾아보라 할 것이다.

그 사진을 선택한 이유와 사진 제목을 붙여보라 할것이다.

물론 설명은 나중에 제시한다.

질문을 만들어내고

찾아보고 검색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래서 하나라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 내용을 오랫동안 기억하고자 기록하는 습관이 생긴다면

교사로서 너무도 보람있는 일이 아닌가?

오늘도 화이팅이다.

이제 수업할 수 있는 날이 20일 남았다.

그 중에 행사일이 이틀 있다.


(내시경 후유증이었나, 오타작렬이다. 오늘 찬찬이 수정할수 있다는게 브런치의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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