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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INFJ이다.

이제서야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알 것도 같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나를 오래보지 않은 사람들은 가끔 물어본다.

<선생님은 E죠?, T죠?>

MBTI 유형을 100%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의 빅데이터 기반이고 시사점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INFJ 이다.(주변에 그렇게 많지는 않더라)

나도 수상해서 몇 번씩 해보았지만 매번 그렇게 나왔다.

INFJ 성격유형 소개에는

외향적 감정을 지닌 내향적 직관이라고 나오고, 예언자형이라고 하고, 창의력과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하고

좋은 이야기가 많이 써있어서 나를 기분좋게도 하나

자기 내면에 갈등이 많고 복잡하며,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들에게 자극을 받고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해결해나가고자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나를 지치게도 하지만(그래서 어려운 문제가 나를 찾아오나 싶어서) 다시 힘이 나게도 한다.

물론 MBTI 에 빠져 지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 유형도 잘 외우지 못한다. 찾아봐야 한다.


이런 유형의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남들도 그렇겠지만 아픈 것이다.

통증을 참는 것을 제일 못한다.

따라서 나는 귀도 안뚫고(아마 내 나이에 귀 안뚫은 사람은 10명에 2명 정도 일 것이다.)

눈썹 문신도 안하고(아마 내 나이에 눈썹 문신 안한 사람은 10명에 1명 정도 일 것이다.)

물론 쌍커풀 수술도 하지 않았다.(이미 태어날때부터 쌍커풀이 여러겹이었다. 쌍커풀이 설사 없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안했을 것이다. 아플테니 말이다.)

필러나 보톡스 등 미용을 위한 무언가는 해보려고 시도한 적도 없다.

나라고 왜 젊고 팽팽하게 보이고 싶지 않겠는가마는(그것을 할 돈도 없었지만은)

그걸해서 얻는 이득보다 아픈 것이 백배는 더 싫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20년 쯤 전

발가락인가 발바닥에 무언가가 생겨서

피부과에 간 적이 있다.

당시 어렸던 아들과 지금은 어엿한 응급의학과 과장님인 제자가 함께 갔었다.

함께 간 이유는 분명치 않은데 아마도 처치를 받고 같이 밥을 먹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병원에서 당시 처음보는 레이저로 그 쥐젖 같이 생긴 부위를 태워서 떼어버리는 신기술을 썼다.

일단 마취 주사를 맞다가 소리를 질렀고

처음보는 레이저로 살 타는 냄새가 나서 무의식적으로 신음소리를 냈나보다.

처치 후 나와 보니 아들과 제자 녀석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병원이 떠나갈 정도로 내 소리가 컸다한다.

나는 그렇게까지인줄은 정말 몰랐다.

병원에도 방음 시설이 꼭 필요하다고 둘러대기는 했다만

나의 통증 지수는 이렇게 예민하다 못해 민감 센서 수준이다.


이런 내가 통증을 참으려고 애썼던 적은 아이를 낳고 나서이다.

하나뿐인 아들 녀석은 예정일 한달도 훌쩍 전에

태반조기박리로 긴급 제왕절개수슬을 통해 태어났다.

지금이나 그때의 나나 나는 마취에서의 회복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내시경을 할때도 신신당부한다.

마취가 쉽게 되고(하나, 둘, 셋을 센다는데 둘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 마취가 풀리는데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오래 걸린다.

이제는 미리 이야기해서 마취약을 조금만 넣는다.

그런데다가 친할머니쪽을 닮아서 혈관이 얇다.

하루 정도 링거를 달아놓으면 혈관이 터져서 주사약이 새고 그 주변은 금방 퍼렇게 멍이든다.

이것도 수술때는 미리 이야기해서 하루마다 링거 맞는 혈관도 바꾸었다.

아이를 제왕절개로 출산했을 때 (지금은 모르겠다. 88년도 이야기이다.) 나는 아이를 며칠간 보지 못했다.

출산 당일은 꼼짝도 못하고 아파서 헤매였고

가스가 나와야 미음이라도 먹을 수 있고 그것을 먹어야 아이를 보러 갈 수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장 기능이 좋지 않아

수술 후 셋째날 오전이 되어서야 가스가 나오고 미음을 먹었다.

그리고는 면회시간에 맞추어서 아이를 처음으로 보려고

입원실을 나섰다가 다섯 걸음을 걷고는 어지러워서 쓰러지려는 것을

지나가는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이 부축하고는 빨리 휠체어에 앉혀주었다.

내 생애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으로

휠체어를 탄 순간이다.

그렇게 휠체어에 앉아서 보러간 아들 녀석은 두 말할 나위없이 이뻤으나

(그 당시 출산한 아그들 중 TOP3 안에 든다고 간호사님이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굳게 믿는다.)

지금까지 결혼을 안하고 내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래도 올해는 다행히 여자 친구가 생겨서 주말은 매번 데이트하러 나간다. 아직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수술 후 배 땡기는 통증과 몸살을 이겨내며

극강의 어지럼증을 참아내고

오로지 아들을 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던 것이

내가 최대한 통증을 참아본 날이 그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극 I가 맞다.

낯을 많이 가린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모임에 가는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렇게 낯을 가리는데 학생들 앞에 서는 것은 약간의 기분좋은 떨림이다.

천상 강의하는게 천직인가보다.

물론 3월 첫 수업 시간에는 조금 더 떨린다.

그런 내가 E가 되는 순간은 무언가 질문하거나 정보를 얻어낼 필요가 있을때이다.

당면 문제를 해결할 때 필요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첫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낯은 가리는데 다소 용감하다.


그리고 자주 듣는 T가 아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과학을 전공했는데 T가 아니면 안되는 것이다라고.

그러나 객관적이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지만

나에게는 기본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F가 있다.

특히 음악을 들을 때 나의 숨어있던 F가 급발현된다.

요새 나의 F를 발현시키는 노래는 뭐니 뭐니해도

학교 축제 공연곡인 <한페이지가 될 수 있게> 와 <그대에게> 이다.

두 곡다 빠른 템포이지만 가사 내용을 잘 새겨들으면(나는 가사를 중요시하는 스타일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요즈음 같은 시기에는 울컥할 수 있는 곡이다.

즐겁지만, 신이 나지만 한편으로는 울컥하게 만드는 곡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나는 F가 맞기도 한다.


그런데 말이다.

MBTI도 확률 게임이다.

빅데이터 기반이다.

그러나 그럴 확률이 더 많다는 것뿐

매번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내 행동을 조금은 예측 가능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꽤 오래 살았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낸 나에게 조금은 칭찬을 보낸다.


(위 사진은 초임 교사일때 스승의 날에 나에게 주로 학생들이 가져다 주었던 곰 인형 닮은 꼴이다.

그때는 김영란법 훨씬 이전이고 선물을 주고 받을때였다. 물론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말이다.

싫다고 했었는데 왜 학생들은 나에게 그렇게나

곰 인형을 주었던 것일까?

많이도 통통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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