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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명복을 빕니다.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마음이 답답한 주말 오후이다.

아마 온 국민이 그럴 것이다.

옛날에서나 있음직한 비행기 사고가 2025년을 앞두고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쇼크이다.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보다

사망자와 부상자 수습이 더 우선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일게다.

이렇게 마음이 꿉꿉한 날은 머리를 쓰는 일을 하는것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몸이라도 안 놀리면 자꾸 나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선 대청소를 해본다.

일주일에 한나절 전문 청소여사님의 도움을 받았었다.

금요일 오전 그분이 청소해주고 가시면 주말까지는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었다.

그런데 남편의 항암치료로 언제 집에 있을지가 불분명해졌는데 청소여사님을 오시게 할 수는 없었다.

푹 쉬어야하는데 그리고 아픈데 누가 왔다갔다하면 그리고 청소 소리가 나면

청소하는 사람이나 집에 있는 사람이나 불편할 것이 뻔해서

그만 오시게 정중히 문자를 보내서 나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났더니 집이 너무 급속하게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 물걸레 로봇 청소기까지 고장이 나서 더 암울했었다.

오늘은 마음먹고 로봇 청소기 돌리고 이어서 물걸레 로봇 청소기도 돌리고

수동 청소기로는 구석 구석 숨어있는 먼지까지 잡아냈다.

고양이 털이 사방으로 날라 다녀서 털뭉치로 먼지투성이가 쉽게 되는 것이

우리집 고양이 설이의 단 하나 단점이다.

다른 모든 점은 이쁘기만 하다.

특히 내 머리맡에서 쌕쌕거리고 자는 모습이 최고로 이쁘다.

두 개의 청소기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화장실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개수대 아래쪽도 정리하고(쌀을 다먹어서 10Kg 새 것을 배송시켰다.)

안먹는 와인잔과 그릇은 플리마켓용으로 포장해두었다.

남편은 침대를 혼자 쓰게 정리해주었었다.

새벽녘 통증에 부대낄때 넓은 침대를 이리 저리 뒹굴어야할테니 말이다.

시트도 갈고 이불도 털어주었다.


그리고서도 답답한 마음은 쉽게 가셔지지를 않는다.

이곳 저곳 정리할 것이 없나 살펴보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커다란 액자이다.

나의 늦은 박사학위 수여식의 가족 사진이 3장이나 들어있었다.

엄마, 아버지의 흐뭇한 얼굴 옆으로

부산에 사시던 올해 돌아가신 고모 얼굴도 있고

목동 근처에서 함께 가족처럼 지내던 돌아가신지 8년이 된 외삼촌 얼굴도 있다.

우리 집안 최초의 박사는 막내동생이었는데 막내는 외국에서 박사를 했으므로

이것처럼 총출동하여 기념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그리고는 두번째는 나였으니 기념 삼아 모두들 출동했고

그날 가족모임 식사를 홍대앞 맛집에서 거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모두들 이곳에 안 계시는 분들과 함께 한 추억의 사진만 빼고

액자는 분리수거 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모두들 많이 아파서 오랫동안 고생하다 가셨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애닯은 것은 매한가지이다.

하물며

오늘 갑자기 성탄절 즐거운 가족 여행을 갔다가

혹은 출장이나 개인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귀국하다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의 참변을 당한 분들의 가족들의 마음은 헤아릴 길이 없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 말밖에 그리고 애도의 마음밖에

어떤 말도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될 수는 없을 것을 안다.

가까운 사람을 보내본 사람만이 그 힘듬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공허함은 지금보다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더 심해진다.

엄마를 보내고 3Kg, 아버지를 보내고 2Kg

살이 빠졌었다가 아직까지도 회복이 되지 않는다.

아픔을 나눌 수는 없겠지만(그것은 사실 힘들다) 아픔에 백배 공감한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오래되었지만 오늘 정리한 그 사진 속의 엄마, 아버지, 고모, 외삼촌도

그곳에서 따뜻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들 녀석과 나는 오랫동안 침묵과 한숨으로 사고 뉴스를 지켜보았다. 저녁 뉴스를 이리 오래 본것은 참으로 오랫만이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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