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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 투어 서른 네번째

서울은 아니고 서울 근교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침부터 컨디션이 영 별로였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캔슬하고 절대로 집밖으로 나서지 않았겠으나

공식적인 약속이 하나 있어서 할 수 없이 12시에 집을 나섰다.

다행히 바람이 많이 불거나 많이 춥지는 않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광교중앙역 부근이다.

따라서 집에서는 7호선을 타고 논현역에서 신분당선으로 환승하면 된다.

아직 나는 신분당선과 수인분당선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이름을 이렇게 헷갈리게 지어놓으면 어떡하냐?

내 잘못이 아니다.


익숙한 7호선에서는

임산부석에 앉은 젊은 남자와(종종 본다. 아무렇제도 않은 듯 하다.)

독감이 유행이라는데 마스크를 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손꼽을 정도였고

기침은 사방에서 해대고 있고

대낮인데 찐한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는 연인도 있다.(머리 정수리 냄새는 왜 맡는거냐? 나는 도통 모르겠다.)

이 내용을 간단하게 스레드에 기록하고 나니 논현역에 도착했다.

조금 걸어서 신분당선으로 환승하는데 기후카드는 여기부터는 안된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하다.

그래도 주말이라 승객이 많지 않아 금방 앉게 되었고

축제 계획안을 보면서 다음 주 할 일의 계획을 세우는 보람찬 시간을 보냈으니 만족한다.

약속 시간은 두시 반인데 나의 부지런함으로 1시 15분에 광교중앙역에 내렸고

나는 근처 백화점몰에서 간단한 점심 혼밥을 하려 했다.

아무 생각없이 백화점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지하 1층으로 내려갔으나(대부분은 지하 1층에 있다.)

그곳은 푸드 코트가 아니었다.

이럴때는 아날로그식으로 물어보는게 장땡이다.

이곳은 희한하게 3층이 식당가라 한다.


3층을 돌면서 식당을 훏어본다. 이것은 나의 전공이 아니더냐.

맛있으면서 가격은 적당하고 특히 양이 적당한 메뉴를 고르는 것 말이다.

백화점 식당가이니 깨끗하고 정갈한 맛일 것 같았으나 모두 양이 많은 메뉴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두 바퀴를 돌고서 나는 7,000원짜리 짜장면을 선택했다.

올해 첫 중식임에 틀림없고 아마 작년에도 짜장면을 내돈 주고 사먹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양이 딱 맞을 것 같았다. 물론 조금은 남기겠지만 말이다.

사실 끌리는 메뉴는 군산오징어라는 집이었으나

양이 너무 헤비해 보였고 매운 것을 먹기에는 위염이 있는 나의 위가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았다.

키오스크로 주문한지 5분도 안되어서 짜장면이 따뜻하게 나왔고 면이 퍼지지도 않았고(합격이다.)

중식의 질을 결정짓는(내 기준에) 짜사이도 맛났고

맛과 양은 심플하고 기본에 충실했으며

다섯 알쯤 올라간 완두콩이 화룡점정이었다.

가격마저 착하니 오늘의 선택은 매우 낭만적이고 성공적이었다.

게다가 계산하는 주인장은 친절하게 어려운 위치에 숨어있던 화장실도 설명해주었다.

단지 광교중앙역에서 백화점몰까지 꽤 걸어야 한다는 점,

화장실의 옷걸이가 너무 높은 위치에 있다는 점이 굳이 흠집을 잡을 수 있는 점이었다.


시댁과도 가깝고

친한 친구도 한 명 살고 있는

그리고 옛날 명절에 몇 번 산책한 기억이 있는 광교 호숫가 근처는

서울은 아니지만 마냥 낯선 곳만은 아니다.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하다.

나는 편의점에서 생수를 한 병 사서 추가로 약을 더 먹고

마스크를 새로 사서 바꿔 끼었으며

더 아파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공적인 일을 마쳤다.

집에 오니 긴장이 풀어져서 눈이 절로 감긴다.

그런데 그 사이에 아까 쓴 지하철 내의 꼴불견 내 스레드 글이 조회수가 1,000회가 넘었다고 하고

처음으로 내 브런치 글을 하루에 150명 이상이 읽었다는 메시지가 떳다.

무슨 일일까?

선물같은 하루였지만 더 이상 아프면 안된다.

아직 할 일이 많이 있다.

이글을 올리고 들어가서 다시 통계를 보니 200명이 넘었다.

처음이라 좋기도 한데

당황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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