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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16

무지막지한 A형 독감의 끝

by 태생적 오지라퍼

오늘 아침에서야 받아온 약도 다 먹었고 몸도 많이 나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제 밴드반 연습으로 다소 무리한 경향이 있어서 다시 아파질까 걱정도 하였으나

집에 와서 정신없이 자고 났더니 오늘 아침이었고

이제는 느껴지던 A형 독감을 떨쳐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픈 동안은 이상하게 방안 침구에서도

욕탕 변기에서도 미세한 세균 냄새가 난다.

누워만 있고싶고

저절로 감기던 눈이 절대 안 감겨지고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게 허리가 아파오는 것을 보니 마무리 시기인 듯 하다.

그 무지막지한 A형 독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지만 오늘과 내일은 온전히 회복에 집중하려 한다.

물론 축제 부스 안내문을 미리캔버스로 만드는것과 같은 소소한 일들은 하지만 말이다.

오프닝 영상을 <최강야구> 예고편처럼 멋지고 웅장하게 만들고 싶으나 그것은 나의 역량 밖이다.

다음 주는 대망의 나의 마지막 업무, 학교 축제가 있는 주이다.

없는 기력을 200%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나 혼자 산다>에서 은퇴하는 어머니를 위해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는 멋진 아들편을 보았다.

36년간 한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은퇴하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들과

그 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이(혹시 직장인이라서 무언가는 잘못해주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그 마음이)

그리고 그 시점에서 이유없이 힘을 주셨으나 이제는 옆에 없는 친정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 모습이

지금의 나의 처지와 매우 닮았고

나를 보는 듯하여 눈물이 또 조금 났다.

지난주 부터 눈물이 많아졌다. 벌써 이러면 안된다.

물론 나는 아들과 함께 마지막 퇴근길을 함께 할 것도 아니고(닭살이 돌아서 싫어한다.)

아들 녀석은 그렇게 해 줄 생각도 전혀 없겠지만(나의 스타일을 조금은 안다.)

아마 마음만은 비슷할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번에 A형 독감으로 아프면서 본의아니게 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병원에 갈때도 함께 갔고(두 번이나 쓰러졌음을 간호사에게 미리 안내를 해주었고)

어제 출근할때도 지하철역에 내려주었고

퇴직의 그 날까지 지하철역에 내려준다하니

나도 이만하면 행복한 엄마이다.

프로그램 속의 그 어머니도 회사에서는

마지막 날까지 일에 싸여 퇴직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나도 아마 그럴 듯 하다.

다음 주 축제가 진행되고 나면

생기부 정리가 대표적인 학년말 마무리와 축제 마무리도 업무도 있고

중구청에서 지원받은 방과후학교와 동아리 지원금 결산 보고서도 작성해야하고

2025학년도 다시 지원금을 신청하는 공문도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정신없이 퇴직을 실감하지 못하고 마지막날

이제 방학이 되었나보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미 내 책상 주변 정리도 끝냈고

남은 것은 플리마켓 거리로 이번 주말 정리할 것이고

월요일 퇴임식에 동료들에게 선물

유기농 딸기잼과 배청은 17일에 들어올 것이고

나는 여느 선배 교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그렇게 사라져가는 것이 목표이다.

물론 2025-1학기간 A/S는 해 드리겠다고 이야기해 두었다만...

마치 A형 독감과의 마무리를 칼같이 해야하는 것처럼

헤어질때는 아무 미련없이 그렇게 쿨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려면 이번 졸업식은 올라가보지 말아야겠다.

축제야 나의 업무이니 그리고 파티의 장이니 할 수 없다고 해도

졸업식은 그것과는 다르니

그리고 나의 마지막 제자들의 졸업이니만큼 절대 올려다보지는 않으련다.(작년에 마지막 담임을 한 녀석들이다.)

요새 누가 졸업식을 하면서 울겠냐마는

아직도 우는 순수한 몇 명이 꼭 있다.

그들을 보면 그들과 마주치면 절대 안된다.

모양 빠지게 울면서 마지막 날을 보내기는 싫다.

나는 나답게 쿨하게 스마트하게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남들이 축하해줄 제 2의 인생은

아직 아무것도 준비한 바가 없다.

나답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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