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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사랑 10

집콕의 즐거움을 느껴보는 중

by 태생적 오지라퍼

어렸을때부터 집콕을 좋아라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라하고

야외 놀이터를 좋아라 하고

하다못해 학교 운동장을 좋아라 하던

야생의 소녀였다.

늘상 집콕 안방파인 어머니와

필드 체질인 아버지 중에

친구는 인생에 몇 명 만 있으면 된다셨던 어머니와

매일이 친구들과의 유흥과 놀이셨던 아버지 중에

누가봐도 아버지를 빼다박았다.

다들 이야기했다.

<아들이 삼신할머니의 실수로 잘못 태어났다고>


그런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묘한 가운데 어디쯤(아니다. 분명 아버지쪽에 가까운 2/3 지점에) 내가 있다.

먼저 나는 친구들은 좋아라 하지만 유흥은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술이라고는 입에 대지 않고(몇 번은 취해봤다. 주로 제자 녀석들과이다.)

술집의 술 냄새와 담배 냄새 그리고

술을 핑계로 묘하게 소리가 커지고 행동이 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싫어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제 정신으로 하지 술의 힘을 빌려서 뒤로 까기하는 그 모습이 비열하게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벽녂까지 함께 하는

그 놀라운 체력이 나에게는 없고

그러기에는 다음 날의 일정이 너무도 소중하다.

친구들과 마냥 넋놓고 수다 떠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아주 가끔은 힐링이 된다.)

무엇인가 의미가 있는 활동을(전시 구경 혹은 임장 혹은 디자인 구경이라도) 함께 하는 것을 좋아라 한다.

그러니 나와의 모임은 밥만 먹는다기보다는

무언가 같이 하는 것이 있는 모임이 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주로 지인들과의 스포츠 활동을 좋아라한다.

어려서는 피구와 땅따먹기를 했었고(무릎팍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다. 무릎 깨진곳에 딱지를 만들어주는 하얀 가루를 상비약으로 가지고 다녔다.)

초등학교 고학년에는 남학생들과 축구와 야구와 골프를 했었고(물론 실력은 미천했지만 이론은 바싹했다. 골프는 내 의지가 아니고 아버지가 강제적으로 시키셨다. 재미없는 빈 스윙만.)

라디오 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공부와 함께 하는 이중 작업을 시도때도 없이 시도했다가 어머니께 등짝 스매싱을 맞았고(음악을 틀어놓고 공부하는 사람은 봤었다지만... 집콕 어머니의 분노는 극에 달했었다.)

중 고등학교에서는 농구와 배구를 했었고(그리 잘하지는 못했다만 역시 이론은 만점이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테니스와 수영을 시작했고(물론 체육 학점 이수때문이다만. 유일하게 좋아하지않는게 수영이다.)

올림픽 때마다 절규했고

재방을 수없이 돌려보았으며

월드컵때는 기도 메타를 위하여 온 동네를 걸어서 돌아다녔고(내가 직접 안봐야 이긴다는 지독한 징크스 때문이다.)

올림픽 금메달 야구 쿠바와의 경기는 가슴이 쓰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테니스를 치다가 엉겁결에 골프로 넘어온 이후에는(제대로 레슨을 받지는 않았다. 약간 마구잡이 스타일이다. 스포츠도)

잘 치지는 못하지만 가끔 한번의 굿샷 공 날라가는 포물선 궤적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리고는 바로 작년 이맘때였다.

겨울방학 맞이 1년에 한번 외국에서 공을 치는 오래된 모임에서

전혀 의도치 않았던 홀인원을 했던 것이 말이다.

치는 순간 잘맞았다는 느낌은 들었었지만 그것이 쏙 들어갈 줄은 정말 몰랐다.

홀인원을 했다는 기쁨보다는 운이 들어오려나하는 기쁨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딱 1년이 지났다고 오늘 나의 사진들이 알려준다.

홀인원의 대운은 잘 모르겠지만 이제 골프를 그만해도 될 때가 왔다는 그 느낌은 왔었다.


이제는 그렇게 다양하게 좋아하던 스포츠를 즐기는 시대는 지나갔고 감상하는 시대가 되었다.

무리하게 더 하려고 했다가는 큰 일 나는 시기임도 잘 안다.

그 옛날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거나에 상관없이 무모하게

테니스를 치고 골프를 쳤던 그 시절이 절대 돌아오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다음 버전으로 할 수 있는 노년 스포츠는 무엇이 될까 살짝 고민은 하고 있다.

파크 골프는 약간 시시할 수 있을 듯 한데

친구들이 하자고 하면 못 이기는척 가보려 한다.

물론 이제 할 수 있는 최선의 스포츠는 산책이다.

가파른 등산 아니고 평평한 길을 구경하듯이 천천이 걷는 산책이다.

은퇴 후 시간이 나면 <김성근 감독님 팬카페>에서 알려주는 <최강야구> 비공개 직관을 가볼까도 한다.

직접 하는 것에서의 희열은 못 느끼지만

열심히 하는 것을 보는 것에서 오는 짜릿함은 영원할 수 있으니 말이다.


집콕을 엄청 싫어하고

집콕한 날은 아픈 날이나 의미없이 보낸 날이라고 생각하던

그 옛날의 나도 나지만

집콕하면서 청소하고 반찬하고 빨래하고 빨래 개키고

고양이 설이와 눈 맞추고 좋아라하는

요즈음의 나도

충분히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임을 이제는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와 오늘은 딱히 한 것이라고는 없는 온전한 휴식의 날이다.

A형 독감 끝이니 쉬는 것이 당연하다.

집콕은 휴식의 동의어이다. 나에게는...

그런데 우리 엄마는 거의 대부분을 이렇게 집콕 버전으로 계셨었는데(한달에 한 두 번 모임이 있으셨다.)

일평생 무슨 재미가 있으셨으려나.

엄마의 일상이 궁금해지는 그 옛날 엄마스타일로 지내고 있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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