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17
상대 전적 3 : 1
참 만만한 하루가 쉽지 않다.
한때는 매일이 비슷비슷해서 지루하기조차 하다고 푸념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하루하루가 너무도 다이나믹한 일이 벌어져서
이것은 뭐 공상과학만화가 아닐까 싶다.
예상대로라면 나는 A형 독감에서 잘 회복하여
이번 주 축제를 진두지휘하면서
아직은 잘 돌아가는 나의 머리회전력과 업무 추진력을 뽐내면 되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나? 오늘 하루를 복기해본다.
출근길은 아들 녀석이 지하철역에 내려주는 것으로 평범하게 시작했다.
어제 모 장학사가 가져다 준 플리마켓 물품과 피칸파이를 가지고 말이다.
그리 무거운 짐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무거웠나보다.
나의 지금 허리 상태에는 말이다.
지난번 독감 판정을 받는 날
잠시 기절하면서 그때의 대짜로 뻗은 충격으로 왼쪽 엉덩이와 허리가 아직 아프다.
피칸파이와 황도, 백도 통조림을 아침으로 나누어 먹을 생각에(통조림이 무거웠다.)
마음은 신이 나서 룰루랄라 갔는데 몸은 전혀 신이 나지 않았나보다.
첫 번째 미스였다.
오늘의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미션 중 플리마켓 물품 정리를 1교시부터 시작하였다.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종류별로 모두 꺼내고 박스를 풀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쪼그리고 허리를 숙이고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니 그게 무리가 되었나보다.
그래도 시작했는데 그만둘 수는 없어서
실무사님 두 명의 도움을 받아 물품 정리를 모두 마쳤더니 오전이 다 지나갔다.
내 허리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일의 양이었다.
두 번째 미스이다.
그래도 점심은 미역국이다.
미역국이 나오는 날은 폭망하는 날은 아니다.
알감자구이와 디저트는 싸가지고 와서 오후를 대비하였고 미역국, 돼지갈비찜, 김치 단촐한 밥상이다.
그래도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칼퇴하였다.
목요일 초과근무와
금요일 최대의 업무를 위한 에너지 축적 차원이다.
퇴근 길에 플리마켓 물품 정리하면서 봤던
나의 결혼 시계를 지하철역 앞 시계 수리점에 보여주었다.
그 당시 가장 잘 나가는 국산 최고 고가의 금장 시계였으나 이제는 그냥 버리라고 한다.
세월의 무상함이다.
이럴 걸 왜 그리도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민했었단 말이냐?
바로 그 옆의 제주 해장국 1인분을 포장하여 귀갓길에 올랐다.
약간의 비와 눈과 진눈깨비가 휘날리는 퇴근길에 나는 왜 힘든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힘들다 힘들다만 속으로 외칠뿐.
퇴근길에도 역시 학교에서 정리한
몇 몇가지 물건에 해장국 포장에 만만치 않은 무게를 들고 왔는데
허리가 아프다는 현실을 망각한 나의 세 번째 미스였다.
모든 실수는 현실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1인분 해장국을 아들과 나누어 먹었는데도 양이 많다. 이 맛집이 그렇다.
대파를 비롯해서 선지, 고기, 당면 그 모든 것이 푸짐하다.
잘 먹어서 힘을 내야지하는 자연스러운 뇌가 작동했나보다.
국밥 한 그릇을 오랫만에 다 먹었다.
물론 1인분을 1/3만 내가 먹은 것이지만...
내몫을 다 먹은 것은 참으로 오랫만이다.
밥의 양은 작았으나 아마도 뱃속에서 국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었나보다.
국밥을 반쯤 먹으면서부터 이미 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는 빵빵하면서 숨쉬기도 힘들어진다.
이럴 때의 나는 맛나게 식사를 하시고는
순간 쇼크로 자주 쓰러지시던
친정아버지의 잔상이 생각나면서 몹시 두려운 상태가 된다.
이런게 아마도 외상에 의한 스트레스 증후군임에 틀림없다.
나도 많이 먹었으니 아버지처럼 쓰러질지 모른다는 그런 악몽 때문에
나는 의도하지 않은 후천적 소식론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간신히 설거지만 마치고
도저히 글을 쓰지 못하고 일단 누웠다.
아들 녀석이 운동 나가는 것도 보지 못하고 말이다.
깜빡 누워 잤는데 고양이 설이가 나를 다급하게 깨운다.
평소 나의 루틴과 다른 것을 눈치 챈 모양이다.
어렵게 몸을 일으켜 글을 쓰러 앉았다.
오늘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다.
설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상하게도 잘못한 일은 지나야만 그 잘못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원인도 늦게나마 파악하게 된다.
오늘을 통털어 세 번의 미스와 한 번의 잘 한 일. 그래도 완패보다는 낫다.
내일은 승리하는 날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