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에는 방송국 PD를 해볼까나
이제부터는 무엇을 해도 모두 학교에서의 마지막 일이 되겠지만 축제는 특히 더 그렇다.
마지막 학교에서 3년간 했던 제일 큰 업무이다.
업무라고만 생각했다면 마냥 싫기만 할 수도 있는데 사실 나는 방송국 PD를 꿈꾸던 사람이다.
이날은 오로지 방송국 PD라고 생각하고 직업 전환을 하는 날이니
재밌기도 하고 준비할게 많아서 어렵기도 하고 그렇지만 즐겨주는 학생들을 보면 기쁘기도 하니
아마도 방송국 PD들도 이런 마음일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들은 시청률에 민감하니 마냥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을테지만...
두달은 족히 준비한 축제 전일과 당일을 복기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본다.
브런치글을 이틀간 쓰지 못할 정도로 엄청 힘들었던 것은 안 비밀이다.
축제 전날은 리허설의 날이다.
20여개의 체험 부스는 부스를 꾸미느라 정신없고
전시 부스는 1년간의 동아리 활동 산출물을 전시하느라 정신없고
3학년의 뮤지컬 공연은 오전부터 최종 리허설을 하느라 정신없고
나는 빠진 준비가 없는지를 담당계 선생님과 크로스 체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후에는 공연 리허설을 진행했고
나는 진짜로 PD 가 된 양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느라(아니다. 내가 본 PD들은 자리에서 마이크로 지시만 하던데)
가뚝이나 아픈 티눈 발가락과 복대찬 허리의 통증이 몰려왔고(사실 1교시부터 발가락에 쥐가 났었다.)
자꾸 늦어지는 리허설과(빨라지는 것은 구조적으로 있을 수가 없다.)
내 맘과 같지 않은 조명음향업체와의 협업, 그리고 점점 늘어만 가는 추가 업무는 끝이 날 줄을 몰랐다.
결국 나는 지칠대로 지쳐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항상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
하필 그 시간에 나에게 온 학생에게 나는 싫은 소리를 하게 되었다.
그 학생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지치고 힘들었을뿐.(행사 중 마음에 걸리는 옥의 티다.)
다음날 아침 물론 진지한 사과와 함께 졸업 격려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잘 알아들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는 결국 초과근무를 하고서야 모든 부스 점검과 공연 사전 준비를 마감하였고
집까지 오는 지하철에서는 역시 손잡이에 기대어 눈을 반쯤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새벽 한 시에 깨어서 행사를 고민하다가 어찌저찌 다시 잠이 들어서 다행이었다.
행사 당일날 시간은 순삭이다.
9시반이 되니 오늘 오전 부스를 운영해줄 외부 강사님들이 하나 둘씩 오기 시작했고
강사카드와 개인정보제공동의서 및 주민등록증과 계좌사본을 모으고
행사 장소로 안내하고 유의 사항을 안내드리고 모자란 준비물이 없는지 체크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일이다.
오늘 특별히 초빙한 외부 강사님들은 드론 체험, 라크로스 체험, 생화로 리스 만들기 체험, 달의 월령 키트 만들기 체험, 뉴스포츠 트릭샷 챌린지 체험이다.
학생들이 1년간 활동한 동아리 성격과 맞는 부스 운영이 기본이지만
그러면 매번 비슷비슷한 것만 하는 한계가 있다.
중학생들에게는 새로운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최고라는 나의 지론에 따라 전문가들을 초빙한다.
외부강사님들께는 소정의 수당을 드리기는 하지만 사실은 거의 재능기부나 마찬가지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는 나의 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간 플리마켓은 다행히도 오픈런 러쉬를 불러오는 만원사례를 이루었다.
남은 물건은 다음 주 수업 시간에 한번씩 돌면서 재고떨이를 하면 될 것이다.
11시 반부터는 오늘 공연 외부 출연자들의 리허설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한시부터 거의 네시까지의 본공연은 뇌리에 각인만 되어 있을 뿐
그 모든 내용을 나의 미천한 글솜씨로 옮길수는 없을 것 같다.
우아한 태평무도 좋았고
울컥한 느낌을 주는 합창도 좋았고
친숙한 가요를 들려준 바순과 오보에 연주도 좋았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것은 작년 졸업생들의 축하 무대였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다.
오늘 아침 8시부터 학교에 와서 동작과 노래를 맞추던 그 녀석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대견하기 그지없다.
시간을 맞추어 꼭 맛있는 것을 사주마 약속했고 멋지게 성인이 된 그 녀석들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밴드부 공연이다. 공연이기는 하나 떼창수준이다. 마무리에는 최고이다.
비슷한 포맷의 축제를 준비하면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그것보다는 세 번째가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점점 눈높이는 올라가고 기대수준도 올라가고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기에는 예산 등 제한 조건이 많은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시리즈물에 도전하는 PD는
대박일수도 폭망일수도 있다.
내 최애 프로그램 <최강야구> PD 도 올해
세 번째인 이 시즌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 말에 나도 이백프로 동감한다.
그러나 나는 올해가 마지막이고
<최강야구>는 내년 시즌도 진행되니
아마 장PD는 내년이 더 힘들지도 모른다.
이번 축제는 그 PD 의 심경에 충분히 몰입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어제의 축제 부스 체험과 공연 무대가
잘했든 못했든 간에 당분간은 최고의 기억으로 남게 되기를 소망한다.
축제란 그런 것이다.
끝나고 나면 아련하고 꿈만 같은 것.
나의 일일 PD 체험은 그렇게 끝이 났다.
끝냈다는 것이 주는 후련함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더 크다.
이제...
일주일 후 나의 마지막 종업식과 졸업식이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