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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18

외식이 기운차리는데 미치는 영향

by 태생적 오지라퍼

A형 독감으로 아프기도 했고

허리가 아프기도 했고

축제 업무로 정신없기 바쁘기도 했고

이래저래 집밥을 해먹지 못한 채로 지난주가 지나갔다.

가스를 키거나 전자렌지를 돌린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난 수요일부터였다.


수요일은 한 달반 정도에 한번씩 하는 머리 염색 DAY 이다.

홍대앞에서 염색을 하고 머리를 단정히 자르고는 맛집에서 친구와 함께 이른 저녁을 먹는 것이 루틴이었다.

그 주변을 천천이 산책하고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것이 이번에는 나의 컨디션 때문에 쉽지 않았다.

친구는 머리를 다듬기만 한다.

왜냐면 명퇴한지 조금 시간이 지나서 자연적인 은발 염색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부럽기 짝이없다.

따라서 항상 내 머리 하는 시간이 더 길리기 마련인데

친구는 싫다소리 한번 하지 않고 그 주변 맛집을 검색한다.

그리고는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서 맛난 것을 함께 먹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많은 위로가 되는 시간이다.

수요일 이른 저녁 대부분의 음식점이 아직 브레이크 타임인 시간.

우리는 그 주변의 곰탕집을 찾아갔다.

맑은 곰탕인데(이제는 둘다 나이가 있어서 자극적인 음식보다 이런 형태가 좋다.)

하나는 녹색 야채를 잘라 다져서 마치 녹찻물처럼 곰탕 국물을 부어 먹는 형태였고

다른 하나는 사골 국물 베이스에 명란을 고명으로 얹져있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창의적인 스타일이다.

그리고 수육에 명란과 야채 다진 것을 양념장으로 만들어 찍어먹는 것도 산뜻했다.

친구랑 먹거리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이제는 안다.

(남편이랑은 조금 안맞고 아들 녀석이랑은 잘 맞는다.)

그리고 산뜻하게 돈은 더치페이를 한다.

그게 우정을 오래 지속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목요일은 축제 대비 우리 부서와 도와주시는 분과 함께 초과근무를 하는 날이다.

학교에서 주는 8,000원의 석식비에 모자라는 것은 내가 보태서 맛난 것을 먹자고 했다.

겨울이라 근처 유명한 중국집에서 굴짬뽕과 적당하게 달달한 탕수육을 먹었다.

을지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첫 번째 학교 방문날 먹었던

하얀색의 굴과 배추 가득한 짬뽕이다.

1년에 한번 지금쯤 먹는 것이 가장 맛난 적기였을지도 모르지만

힘든 업무를 함께 해주는 젊은 후배교사들이 예뻐서였을지도 모르지만

힘든 것, 아픈 것을 잠시 잊어버리게 해주었다.

아 참 목요일은 축제 대비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얇은 도너츠를 모든 사람에게 간식으로 돌렸다.

달달하니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딱이었다.


그리고 어제 금요일.

축제가 마무리되고 나니 퇴근하기도 함들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아들 녀석에게 언제 퇴근하는지 톡을 하니

대략 나의 지하철 퇴근 시간과 맞출 수 있을 듯 했다.

지하철역 근처 주차할 수 있는 적당한 식당을 찾아서 연락달라했다.

아들이 고른 음식은 순대국집.

항상 대기가 있는 맛집이다.

그래도 십 오분정도 대기하고 입장했으니 선방이다.

순대정식에 육사시미, 그리고 오징어볶음까지 시켰다.

물론 작은 사이즈이지만 말이다.

어느 것이 나의 기력을 살려줄지 모르겠어서

세 종류를 시켜본 것이다.

남으면 포장해간다는 마음으로...

어제 저녁은 불맛 가득하고 대파와 오징어가 반반 섞인 오징어볶음이 다행하게도 나를 살려주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축제 기념 호두과자 2종류를 나누어드것은 아들에게 주었다.

하나는 오리지널 다른 하나는 앙버터 스타일이다.

아들 녀석이 여친에게 주겠다고 선택한 것은 앙버터이다. 그럴 줄 알았다.


온전히 휴식하자고 마음먹은 오늘.

래서 티눈 병원 가는 것도 포기했다.

이제야 음식을 위해 가스를 틀고 냉장고 정리를 하고 반찬 거리를 주문하였다.

콩나물을 한 겹 깔고 양파와 대파 넣고 쭈꾸미 볶음을 하고(어제 오징어볶음 후광일수도 있겠다.)

화요일 로스구이로 고기 구워놓았던 것은

다시 달달 양념에 재워놓았고

야채와 두부 듬뿍 넣고 샤부샤브를 끓여두었다.

냉장고에는 아직 먹지 못한

오이가 있고 낫또도 먹어야 하고

어제 간식으로 가져온 샌드위치도 먹어야한다.

이렇게 주말을 푹 쉬고 집밥을 먹고 나면

그동안 빠졌던 체중도 복귀될 것이고

교사로서의 마지막 일주일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주

월요일에는 학년부 선생님들과 해장국집에서

화요일에는 실무사님들과 솥밥집에서

수요일에는 독수리 7형제 융합과학 동아리 학생들이 쫑파티를 하자하고

목요일에는 서울시교육청 장학사님들과 모처에서

이른 저녁 식사가 예정되어 있다.

내 생애 이렇게 많은 저녁 모임이 있는 일주일이 또 있을까?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그 말이 무언지 알듯도 하다.

그러나 나는 다음 주 그 자리를 고맙고 소중하게

그리고 가급적 기쁘게 즐길 예정이다.


(글을 쓰고 한참 지나서야

화요일도 플리마켓 물품을 가져다준 막내 동생과 양지차돌 쌀국수와 나시고랭을 먹었다는걸 기억해냈다.

기억력의 소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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