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18

수업하기 전 계획 세우는 순간이 제일 신난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공립학교 과학교사로서의 마지막 수업 일주일이 남았다.

물론 2월말까지 나는 공립학교 교사 신분이라 여러 가지 지켜야 할 의무가 있지만

평소와 똑같이 방학 기간이니 별다른 느낌이 들지는 않을 것 같다.

새학기가 시작하는 3월에나 정년퇴직이 확 와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 그렇다고 하더라.

이번 일주일을 어떻게 보람차게 보낼 것인가? 그것이 나의 마지막 고민거리이다.


일단 월요일부터는 35분씩 단축 수업이 진행된다.

45분 수업과 35분 수업은 엄청난 차이가 난다.

마치 어제 커뮤니티센터 사우나의 온탕 온도가 40℃일때와 38℃일때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애써 나은 독감 후에 다시 감기 걸릴뻔했다.)

3학년은 월요일이 마지막 수업인데 3년간 사용했던 태블릿은 이미 반납하였다.

우선 지난 일 년간 사용한 구글 클래스룸에 올렸던 사진이나 자료를

핸드폰이나 집에서 2월까지 다운받을 수 있음을 공지하고

( 그 이후에는 내가 보관처리로 수업을 변동하면 된다.)

화성으로 우주 탐사를 갔다가 불의의 사고로 낙오되어 감자를 키우면서 버티다가 극적으로 구조되는

과학영화 <마션>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될 것이다.

과학영화를 보면서 알고 있는 과학 내용과 연계해 보는 활동은 고차원적인 과학 개념 공부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융합의 시대에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직업을 갖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활동이다.

그러나 한 반은 고교학점제 특강 시간과 맞물리니 마무리하기도 쉽지 않다.

(특강을 미리 준비했다면 시간표 변경등을 해볼 수 있었으나 지난주에 갑자기 결정되어서 변동이 어렵다. 이런 갑작스러운 행사는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

수업이 있는 2학년 한반은 일단 전교를 돌아다니면서 축제 관련 포스터 등의 부착물을 깨끗이 제거하는 활동을 먼저하려 한다.

선거가 끝나고나면 벽보를 가장 먼저 깨끗이 제거하는 사람에게 나는 다음번 기회를 주는 편이다.

행사는 준비도 진행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는 것이 최고이다.


2학년 수업은 일단 플리마켓물품을 정리해놓은 기술실을 한바퀴 돌면서 남은 물건 중 가져갈 것을 고르게 하려 한다.

정리차원에서도 그렇고 플리마켓이란 활동의 의미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후속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도 정리가 되지 않은 물품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가져와서 분리수거 등 적절한 방법을 쓰면 된다.

플리마켓은 매해 한번씩 내가 열심히 준비하는 행사이다. 기간이 축제 기간일뿐.

살아가면서 느껴야 할 중요한 개념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껴쓰고 안쓰는 것은 나누어쓰고 꼭 필요한 것만 구입하는 생활방식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회성 이벤트식의 행사는 보여주기식의 표본이다.

이벤트와 교육의 다른 점은 지속가능성 여부이다.


수, 목요일 2학년은 지진이 일어났다고 가정하고

5분안에 챙겨야 할 재난대비 물품을 적어보고

태블릿을 이용하여 우리집 주위의 대피장소를 확인하는 작업을 한 후

다시 조별로 모여서

정말 중요한 재난대비 물품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그렇게 선택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마지막 토의토론학습이 진행된다.

이렇게 나의 40여년간의 공식적인 수업은 모두 마무리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오늘 현재 나의 수업 계획이다.


그러나 수업은 라이브방송이다.

어떤 변수가 어떻게 발생할지 알 수는 없다.

수업이란 그런 것이다. 살아있는 것.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힘들다.

그 일을 평생했으니 이제 질릴만도 하건만

나는 아직도 강의를 이리저리 구성하고

멋진 강의하는 것이 참 좋다.

학기 중 주말은 다음 주 수업을 계획하는 날이었다.

이제 주말은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다 그 많은 평일도 무엇을 할 것인가?

결정된것은 아무것도 없다.


(3월 이후

과학교육, 미래교육, 지속가능발전교육, 생태전환교육 관련 강의 기쁘게 접수 받습니다.

강사료는 조금만 주셔도 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