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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아들 녀석 댕큐

츤데레 스타일이지만 고맙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아들 녀석을 낳은 일이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가장 아쉬운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아들 녀석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바쁘기도 했고 여유가 없기도 했다.)

아마 나를 비롯한 이 땅의 어머니들은 다 그럴 것이니 나만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하나뿐인 아들 녀석이지만

그만큼 서로를 속상하게 만들기도 했었는데(여러가지 자잘한 일상의 이슈가 있었다,)

의도치않게 아빠와 엄마가 모두 아픈

2025년 1월이 되어서야

나는 아들 녀석의 진가를 이제서야 알게 된 것도 같다.


먼저 아빠가 위암이라고 진단을 알리고 나

아들 녀석은 그렇게 치우라고 정리하라고 노래를 불러도 꿈쩍하지 않던

자신의 방을 깨끗이 정리하면서

아끼던 TV를 아빠방으로 넘겨주고 연결해주었다.

자기 방을 무슨 딴 세계처럼 만들어놓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그곳에서 자기만의 계정으로 모든 것을 보던

그 TV를 넘겨주다니 나는 살짝 놀랐다.

아빠와 아들 녀석의 TV 프로그램 취향은 극과 극이다.

나와 남편도 극과 극이다.(내가 이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드라마를, 나는 스포츠를 본다.)

가족 모두가 오붓하게 하나의 프로그램을 같이 보는 일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아들 녀석의 TV 자발적인 헌납으로 가정의 평화가 지켜졌다.


그리고는 거의 매일 저녁 약속이 있다고 늦게 귀가하더니

가급적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게 보인다.

나와 남편이 천천이 조금씩 소식하는 불편한 저녁 식사자리일텐데

그리고 자극적인 음식도 없는데(물론 녀석이 먹을만한 별식 한가지씩은 준비해주었다만)

그 시간을 함께 해주려는 녀석의 노력이 보인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평일 저녁에는 데이트가 쉽지 않다는 점이 작용하기는 했다. 여자친구가 서울 직장이 아니다.

그래도 그 많은 친구를 자랑하는 아들 녀석이

저녁 모임을 자제한다는 것만으로도 효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2주전 내가 A형 독감을 만나 쓰러지는 일이 벌어지고서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를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간다.

그러려면 자신의 출근 시간보다는 15분 정도 앞당겨서 나가야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해주는 것이다.

이번 주까지 출근하는 나는 덕분에 기력을 많이 아낄 수 있다.

어제도 마지막 영어 시험 감독을 끝내갈때쯤 연락이 와서

집에 들어가는 길에 픽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했더니

일요일에 문을 연 맛난 식당을 찾아서 함께 가주었다.

허리뼈에 좋을까 싶어 선택한 도가니탕을 나누어 먹고

이왕 학교까지 온 김에 정리해야 할 내 개인짐

한 박스도 번쩍 들어 날라주었다.

이제 나는 책상에 얼마남지 않은 소소한 것들만 정리하면 된다.(마지막날 버리면 된다.)

나는 아들 녀석의 그간의 수고에 감사하며

마지막 시험 감독 수당을 기꺼이 봉투째 녀석에게 넘겨주었다. 그걸 바라고 하는 행동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 정도가 무슨 효도축에 들어가냐고 누군가는 비웃을지 모른다만

나는 츤데레 스타일의 아들 녀석을 잘 안다.

말은 안해도 엄청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느껴진다.

어제 이야기 끝에

오랫동안 병환중인 동생이 다시 상태가 나빠져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중한 아들 녀석의 한 마디가 나를 울컥하게 했다.

<엄마가 이모보다 먼저 갈 뻔 했어요. 정년퇴직 2달 남기고 그냥 퇴직할뻔 했네요.>

그 날 아침 갑자기 쓰러진 나를 본 것이 정말 충격이긴 했나보다.


무엇이든 행동의 변화에는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변화를 가져 온 계기는 물론 안좋은 내용이었으나 아들 녀석 행동의 변화는 확실히 보인다.

아니다.

원래 마음이 따뜻한 녀석이었는데

내가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혼자 섭섭해하고 그랬을지 모른다.

이제야 아들 녀석의 진가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 가까운 사람이 자세히 못보는 경우도 많이 있다.(그녀는 알아채렸기를 바란다.)

아들 녀석에게 민폐를 더 이상 끼치기 싫어서라도 기력도 빨리 찾고 아프지 말아야겠다.

아마 남편의 마음도 똑같을 것이다.


어제 시험감독길에 살펴본 학교 운동장에는

몇개 남은 꼭대기의 감을 나누어먹으려는

작은 새들의 분주한 속삭임과

새순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조용한 움직임이 느껴져서 좋았다.

아직은 춥지만 봄은 분명히 올 것이고

저 꽃이 피는 3월에

나는 그것을 볼 수는 없을 것이지만

마음만은 함께 저 작은 새와 나무를 응원할 것이고

하나뿐인 나의 아들 녀석도 영원히 응원할 것이다.

나의 정년퇴직이 가능하게 해준것은 누가 뭐래도 조용히 잘 커준 아들 녀석의 공이 제일 크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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