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

즐거운 퇴임식

by 태생적 오지라퍼

진정한 마무리의 시간이다. 오늘은 나의 공식적인 퇴임식 날이다.

교직원 회의의 메인 주제는 진급 사정회이다만...

1년을 잘 보내고 나면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진급을 시킬 것인지 회의를 거치게 된다.

물론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므로 수업일수 대비 2/3 이상의 출석을 확보하지 못한 학생 아니면 모두가 진급이 확정된다.

미인정 외국 유학등으로 인한 유예 형태가 아니면 모두가 진급하는 것이다.

기쁘게 모든 학생들을 진급시키는 것에 동의한다.

2학년 진급사정대상자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으로

직원회의에서 2학년부장으로서 발표하는 내 모든 역할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는 겨울방학 계획, 다음 학년도 업무 분장 등에 대한 안내를 마치고

정말 쑥스럽기 그지없는 퇴임식의 순간이 왔다.

사실 나는 무슨 무슨 식이라는 형식을 그다지 좋아라하지 않는다만

보내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가족들을 부르는 그런 거창한 형태는 아닐지라도 남은 사람들이 주는 마음은 기쁘게 받기로 하였다.

꽃 바구니와 간단한 상패 그리고 나의 한 마디와 사진 촬영 시간은 딱 적당했다.

무슨 무슨 식이 형식적으로 길어지는 것을 몹시도 싫어하는 나의 스타일에 맞춤형이다.

한 마디 말을 하라 한다.

무슨 말을 할까하다가 마지막 학교에서

위기도 있었지만 행복했었다는 이야기말고는

그리고 감사했다는 이야기말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퇴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실무사님께

정말 간단한 나의 퇴직기념 답례품을 좌석에 놓아달라고 부탁드렸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퇴임 선물과는 다른 품목을 드리고 싶었다.

퇴임기념이 크게 박혀있는 수건이나

학기말이라 넘쳐나는 먹거리 샌드위치말고

나다운 참신한 것을 오래전부터 고민하였다.

고민끝에 오래전부터 생태전환교육을 함께 고민하였던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만든

딸기잼과 배청 세트를 주문하였다.

유기농이라 설탕과 방부제 등을 넣지 않은

달지 않고 착한 맛이다.

빵에 발라 먹어도 되고 샐러드 소스처럼

혹은 요쿠르트에 넣어 먹어도 되는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

단, 오픈한지 한 달 안에 모두 먹어야만 한다.

대용량이 아니니 그것은 가능하지 싶었다.

그리고 생태활동을 꾸준히 한 나의 이미지와도 조금은 어울리는 품목이라 선정했다.

원래는 그것만 준비하였으나

나의 첫 제자가 넉넉히 보내준 치약과 칫솔 덕에 선물이 한 종류 더 늘었다.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예측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그 이후 여러분의 방문과 선물이 이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올 2학기에 새로 학교에 부임한 젊은 실무사님께서 꽃과 선물을 주신다.

축제 관련하여 많은 양의 에듀파인 업무를 부탁드린 내가 죄송할뿐인데 말이다.

<부장님의 세월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라는 멋진 문구와 함께 말이다.

박사학위를 위한 휴직 기간을 빼서 그렇지 실제 근무 기간은 40년이다.

세월이 길기는 하지만 긴 세월이라해서 무조건 존경하고 존경받는 그런 시대는 아니다.

그 세월을 인정해준다니 이것보다 더한 찬사는 없을 것이다.

1,3학년 부장님께서는 이미 아침 출근하자마자 선물을 주셨었다.

같은 학년부장이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3명의 동지이다.

그리고는 유일한 동교과 과학교사는 카톡으로 선물을 보내주었고

2년 반 전에 함께 도서관을 리모델링한 사서 선생님도

올해 같은 학년을 맡아 고생한 선생님들께서도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우선 학년부 선생님들과 간단하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학교 바로 앞의 새로 생긴 식당에서 내장탕, 돼지국밥, 육회비빔밥과 빈대떡, 육전과 동그랑땡을 함께 먹었다.

내년 분반 문제도 협의하고

현안에 대한 의견도 나누는

술이 함께하지 않으며 건전하고도 발전적인 의견을 함께 나누는 이런 협의회를 좋아라 한다.

코로나 19 이후로 이런 형태로 회식 문화가 점점 변화되어간 것은

술을 좋아라 하지 않는 나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리고 남은 전 종류는 포장해서 아들 녀석 저녁으로 주었더니 맛나다고 한다.


마지막과 새로운 시작은 어디까지이고 어디서부터인지 명확한 구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만 분명 접점이 있다.

현재는 마지막에 정점을 찍는 중이나 아마도 다음주가 되면 새로운 시작에 무게가 실리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그 정점은 금요일의 졸업식이 될 예정이다.

눈물이 날까봐 마지막 졸업식을 피해볼까 했으나 나답게 웃으면서 따뜻하게 마지막 제자들을 보내주려 한다.

(브런치 독자분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였다.)

이른 저녁을 먹고 퇴근하니 잠이 쏟아졌다.

일단 졸리면 잔다.

요새 거의 신생아 수준의 잠을 잔다.

두어 시간이 지나면 자꾸 깨게 된다.

그리고 나쁜 꿈을 계속 꾼다. 그럴수밖에 없다.

남편의 생각지도 못한 투병에

아픈 동생은 다발성장기부전으로 입원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

오늘은 나의 최애 <최강야구>가 방영되는 날이다.

오랜만에 본방사수 중인데 아직까지는 지고있다.

괜찮다.

마지막에 이기면 되긴 한다만

9회초 한번의 공격밖에 안남았다.

마치 이번 주일만 남은 나처럼 말이다.


(3연속 믿기지않는 역전 야구였다. 베테랑의 힘을 보여줬다. 나도 그들과 같은 베테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나뿐인 아들 녀석 댕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