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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19

내 생애 최고의 날인 1월 22일 이야기

by 태생적 오지라퍼

2학년 수업을 모두 마무리했다.

남은 목요일 수업 세 시간은 모두 과학 영화 마션의 마무리 지구로의 대귀환 과정을 시청하면 된다.

지진 등의 재난재해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물론 안만나는 것이 최고이다)

집 주변의 어느 곳으로 대피하여야 하는지 알아보고

대피용 물품은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살펴보고

친구들과 그 내용을 서로 이야기 나누어보고

합의를 도출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는 과정을 마지막 시간에 진행하였다.

S 그룹 입사 단계의 마지막 팀플 워크숍이라고 가정해주었더니,

그리고 LA 대지진이 일어났을때의 사례를 들어주었더니

모두 몰입감있게 열심히 참여해주었다.

이제부터 꼭 챙겨가지고 다녀야할 신분증과 비상금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마지막 수업과 활동을 평소의 내 수업 스타일대로 재미있고 의미있게 보낸 것 같아서 아쉽지만 괜찮았다.


그리고는 플리마켓 마무리 처리용 짐과 이번에 받은 선물 등 마지막 짐을 오랜만에 가져간 차에 모두 다 실었다.(그러려고 아들 녀석을 회사에 내려주고 차를 가지고 출근하였다. 출근길 정체를 오랫만에 느꼈다.)

이제 금요일에 오랫동안 앉았던 방석은 버리고

실내화는 담고(애착 신발이다. 발이 제일 편하다.)

양치컵과 칫솔은 버리고 치약만 챙겨오면 짐 정리도 마무리 될 것이다.

참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컴퓨터 정리이다.

아직 내년 2학년부장 업무를 담당할 사람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누구나 와서 살펴보면 되도록

2023, 2024 폴더 두 개에 2학년부 업무 자료를 모두 모아두었고

내 개인적인 파일은 USB 에 담은 후 금요일에

모두 삭제할 예정이다.


과학실은 이미 정리를 완료했으나

오늘 독수리 7형제 융합과학동아리 친구들이

쫑파티를 하자고 했고

파티룸으로 만들겠다고 해서 방과후 시간을 내주고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마침내 다 되었다고 나를 모시러 와주었는데

올라가는 순간부터 촬영을 시작하더니 모든 과정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사진찍기를 엄청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번만큼은 순순히 여러 포즈로 찍혀주기로 한다.

언제 내가 스포트라이트 대상이 또 될 것인가 싶어서였다.

같이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녀석들이 이제 더이상은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 7명은 바쁜 이 시기에 언제부터 이야기를 하였는지

교실 뒷면은 꼭 프로포즈룸처럼 만들어놓았고(졸업식날까지 쵤영할 수 있게 놓아두려 한다.)

깨알같은 식순으로 나에게 많은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남학생들의 위문공연 소방차 노래와 댄스도

편지 낭독도 스승의 날에나 듣던 그 노래도

감사의 묵념까지도

그리고 1년간 사진을 모아서 만든 헌정 영상도

모든 것이 귀엽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들이 돈을 모아서 만든 송공패와 초콜릿딸기 케잌도 고맙기만 하다.

케잌은 물론 한 조각씩 나누어먹었다.

그 나이의 그 돈이 얼마나 큰 것임을 잘 알기에,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너무 놀랍고 감사했다.

송공패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선생님께서 저희들의 중학교 2,3학년 동안 주셨던 사랑은 가슴속에 깊이 기억될 것입니다.

어리기만 했던 제자들은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잘 성장했습니다.

이제 명예로운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가정에 평화와 건강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제자들의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진심으로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자신들이 문구를 하나씩 고쳐가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선생님들이 주신 송공패 문구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다.

정말 잘 커주어서 내가 더 고맙기만 하다.


그리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편지를 주었는데

집으로 오는 길에 읽어보면서

쯜끔찔끔 눈물을 안 흘릴 수 없었다.

<저희는 이제 선생님께서 마련해주신 디딤발을 밟고

더 멀리 나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오셨겠지만 이제 더는 가르치지 못한다는 점이 저로선 매우 아쉽습니다.

이런 아름답고 의미깊은 과학 학문을 가르쳤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한 수업은 항상 즐거웠습니다.>

<너무나 좋아할 때 보고 또 보고 싶을 때 그때서야 알게 되는 감정이 그리움인 것 같습니다.

즐겁고 행복했던 중학교 시절이 친구들이 선생님이 많이 그리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에게 과학이, 친구들이, 우리학교의 사랑스러운 부분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제 선생님께 배운 사랑으로 세상을 살아보려 합니다. 사랑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과학의 학문적 의미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중학교에서 주말마다, 방과후 활동때마다 좋은 프로그램으로 자기 계발을 한 만큼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걱정 많았던 중학교에서 과학프로젝트반에 들어가서 생생하고 살아있는 과학을 체험하고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특강갔을 때 순대국밥집에서 너희들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이야기해주셔서 감동했습니다. 저희 가능성을 봐주시고 그 가능성을 펼쳐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무심한 듯 하면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저에게 많이 와닿았습니다.

저희가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여서 영광입니다.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이런 편지글을 쓸만큼 성장한 그들에게 감동받고 감사할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이 아침에 또 오랜만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제는 누가뭐래도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음이 틀림없다.

무슨 일 났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의 고양이 설이가

내 옆을 지키고 있는 아침이다.


(큰일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훌쩍대고 있다. 화장도 다시해야겠다. 이러니 내일 졸업식이 참으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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