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D_DAY
D-1 Day
세 시간의 수업은 <마션> 마지막 부분을 보았다.
10년 전 영화임에도 아직도 그렇게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없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화성에서 우주인을 구출하여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는 분명 해피엔딩 영화인데 왜 마음이 찡한 것일까?
내 인생 공직자로서는 마지막 수업이라 그랬을 것이다.
요즈음은 무엇이든 마지막이어서라고 일단 이유를 대본다.
10시부터는 1시간 이상 서울시교육청에서 야심차게 준비하는 가칭 에코스쿨 건립을 위한
TF 팀 ZOOM 회의를 가졌다.
역시 온라인으로 하는 회의는 가독성도 떨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다음 대면 회의에서나 의견을 제대로 나눌 수 있을 것인데 목소리가 크신 분들이 몇 분 계시다.
나는 오늘 회의에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참 잘했다.
점심은 교장, 교감선생님과 외부에서 파스타, 피자, 샐러드 등을 먹었는데
맛은 별로이고(모든 음식이 짜다) 값은 비싸고
실내에는 난방용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이날 학교 급식은 함박스테이크 였는데 그게 나을뻔 했다.
이제 더 이상 급식을 먹는 일은 없겠다.
마지막 급식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학교에서 교장, 교감 선생님의 적극적인 지지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았으니 덕담을 나눌 시간은 필요했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퇴근 후 교육청 인근에서 지난 학교에 같이 근무했던
현재는 장학사인 두 분과 맛난 저녁을 먹었고
(멋진 꽃도 받았다. 집에 갑자기 꽃이 넘쳐나니 고양이 설이가 이리 저리 광분하고 있다.)
기운차게 추억의 수다도 떨었고
신나게 파주 여행 계획도 세웠다.
그 저녁 식사를 위해서 나는
광화문역에서 서대문역까지의 추억의 길을 다시 한번 걸었고
이제 출근도 하지 않을 것인데 단골 옷가게에서 네모 가방을 하나 샀다.
D-Day
다른 날과 다름없이 간단한 볶음밥과
오이와 당근을 길게 잘라서
아들 녀석 도시락을 싸고
(나는 볶음밥만 가져왔다.)
지하철역에서부터 학교까지 익숙한 출근길을 주위를 살피면서 천천이 걷고
학교 후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손톱달도 찍고(위 사진이다. 잘 살펴보시라.)
졸업식 안내문도 보고
매일 그랬듯이 3층 과학실 전기와 난방을 켜두었다.(누군가 추억의 장소라 들어올지도 모른다.)
다른 날과 차이점은 돌아가신 친정 엄마가 10여년전에 사주신 코트를 입고 왔다는것뿐.
엄마와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었나보다.
그때 이전학교에서 같이 근무한 동료들의 축하 문자와 선물이 도착했다.
<나의 친구이자 스승인.
초등학생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여전히 상황이 되든 안되든 최선을 다해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모습. 참 아름다운 정년퇴임입니다.>
<부장님하면 추진력과 열정 그리고 스마트한 깔끔함이 떠오릅니다.
좀더 편하게 가고 싶고 새로운 것에 망설여지기도 하는 나를 보면서
부장님의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에 엄지척을 보냅니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보려 애쓰시던 모습이 후배들에게 큰 가르침으로 남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하시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정말 잘 달려오셨습니다.>
<한결같이 교육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오셨습니다.
선생님의 언제나 청춘이 누군가의 가슴에 고이 남아 그들의 청춘을 움직이고 있을 것입니다.>
<무심한 듯 속 깊게 챙겨주시고 학교일에 열정을 보여주어 언제나 감동과 감탄을 하게 하시는 선생님.
아직 10년은 거뜬하실 듯 합니다만....>
<언제나 밝고 씩씩하신 선생님 존경합니다. 뒤돌아보니 선생님 귀염뽀짝이셨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오랫동안 열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동안 선생님에게 받은 것에 비해 보답한 것이 부족하여 죄송합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모든 일을 거침없이 해내시던 선생님이 항상 부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새로운 일에 흥미를 잃지 않고 낮은 자세로 도움을 청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의 태도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배우고 싶은 모습이었답니다.>
<창덕에서 처음 뵙고 지금까지
동문 후배로서, 후배교사로서 선생님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제 주변에 이렇게 멋진 선배님이 있다는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주변사람들을 성장시키는 마법의 힘을 지니신듯 합니다. 마라톤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글을 쓰면서 또 한번 눈물을 살짝 닦아낸다.
그리고 다행히 종업식과 졸업식에서는
웃으면서 앞날을 격려하면서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생애 첫 네컷 사진도 찍고(머리에 토끼 밴드도 했다. 그것도 처음이다.)
마지막 간식으로 아들 녀석이 받아온 젤리를 나누어주면서(맛은 별로인듯 했다.)
울지 않고 잘 마무리하였다. 정말 다행이다.
마지막 미션이었던 학교 포상 서류도 오늘 마무리하였고(주말에 검토하여 월요일에 발송하면 되겠다.)
연말정산과 퇴직수당 신청은 월요일 오후에
행정실 담당자 선생님이 도와주기로 하셨다.
월요일은 임시공휴일이나
나는 근처에서 점심 약속이 있고
선생님은 일이 많아서 나오신다한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네시 반이 되면 나는 교문을 나서서 칼퇴를 하면 된다.
양손에 꽃과 선물이 가득하다. 그것때문일까? 집으로 가는 길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아니다.
이제 마지막 겨울방학이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잘했다 한 마디 해주셨을것이다.
아버지는 씩 한번 웃어주셨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