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19

이번 주. 외식의 절정

by 태생적 오지라퍼

이번 주는 저녁 모임이 많았다. 정년퇴직 축하모임이다.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월요일 이른 저녁은 학교 앞 해장국집이었고 그 이야기는 이미 써두었다.(마지막은 새로운 시작편이다.)

나는 사이드 메뉴만 먹었는데 그 이유는 그 이전에 도너츠와 빵 등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배고픈 상태로 다음에 그 식당에 간다면 내장탕에 도전해보리라 생각했다.

아직 내장탕을 스스로 시켜 먹은적은 없었던 것 같다.


화요일은 요새 가장 많이 늘어난 솥밥집이었다.

(이 이야기도 이미 적었다. 서울 골목 투어 서른 다섯 번째편이다.)

나는 솥밥도 좋아하지만 뜨거운 물 부어서 먹는 눌은밥을 좋아한다.

물 말아먹는 밥과 눌은밥을 좋아하는 것은 친정 엄마를 닮은 듯 하다.

입맛이 없으면 물을 말아서 짭짤한 반찬과 같이 먹는다.

그 날 솥밥을 먹고는 다행히 춥지 않아서 살살 걸어서(그놈의 티눈 때문에 빨리 걸을 수가 없다.)

재벌집을 리모델링한 카페에 가서 맛난 디저트도 먹었다. 그곳은 재방문 의사가 분명히 있다.


수요일은 약속이 없는 저녁이었다. 하루쯤은 외식에서 쉼이 있어야 한다. 외식도 힘이 든다.

적당하게 칼칼한 알탕을 끓여서 혼밥을 했다.

나답지 않게 식재료들이 냉장고에 쟁여져 있다.

구정이 코 앞이지만 무슨 음식을 할 것인지 생각조차 할 틈이 없었다.

다음 주 다시 항암 주사를 맞아야 할 남편이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자극적인 음식도 안되니

양질의 단백질을 포함한 영양식을 해야한다는 전제조건만 있다.


목요일은 가벼운 한정식집에서 간장새우밥과 납작소고기구이를 먹었다.

무거운 한정식집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음식 양이 너무 많다.

밥에 버터를 넣고 간장 새우와 전복 및 해물을 넣고 잘 비벼 먹으니 힘이 부쩍 나는 것 같았다.

그 중에 제일 맛난 것은 간장에 적당히 삭아있는 마늘쫑이었다.

음식이 맛있어서인지 함께 한 사람들이 좋아서였는지 힘이 생긴 이유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반반이었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마지막 출근일인 오늘은

졸업식이 끝나고

점심으로는 학교 앞 회식으로 차돌육개장을 먹고(간이나 양이 딱 맞았다.)

육전과 닭강정처럼 만든 동태 강정을 먹었다.

월요일에 먹은 육전과는 얇기에서 차이가 났다.

얇은 것이 만들기는 더 힘들지만 더 맛있다.

아마 당연히 가격도 더 비쌀 것이다.

그리고 오늘 졸업시킨 녀석들과의 각종 추억들을 이야기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서로를 격려했다.

늘상 졸업식날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저녁.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저절로 눈이 감긴다.

저녁만 간단히 먹고 빨리 자야지했는데

냉장고에 반찬이 하나도 없다.

할 수 없이 남아있는 낫또 하나를 비벼서

적당히 익은 배추김치를 올려먹는데

와우. 이번 주에 먹었던 어떤 음식보다 맛나다. 왜일까?

낫또는 친정 아버지가 가장 즐겨하시던 음식인데 나는 왜 먹는지를 영 이해할 수 없었던 품목이었다.

작년인가부터 이유없이 가끔 낫또에 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하기 시작했나보다.

아니면 그런 나이가 되었을 것인지도 모른다.(아들과 남편은 한참전부터 낫또를 좋아라했다.)

오늘 마지막 공식 출근일.

오래전 엄마가 사주신 코트를 입고 출근하며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낫또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우연일까? 의식의 흐름일까?

이번 휴일에 엄마랑 아버지를 뵈러가야겠다. 지난번 A형 독감때문에 못갔었다.

그리고 나의 정년퇴직을 보고드리면 되겠다.

아마 벌써 알고 계실런지도 모르겠지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