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하게 달달한 가지솥밥과 길게 찢은 백김치
마지막 겨울방학의 첫 날.
축구하러 가는 아들 녀석에 함께 차를 타고 네 번째 티눈을 없애러 나섰다.
벌써 갔어야 마땅하나 A형 독감 이슈와 바쁜 일정 탓에 지금까지 미루어진 것이다.
어제는 너무 많이 아팠어서 지하철 경로우대석에 앉아서
왼쪽 신발을 벗고 그 위에 발을 얹어놓고 퇴근할 정도였다.
티눈 병원 가기 전 병원문은 열지도 않은 시간이니
그 시간은 한번이라도 아픈 동생 얼굴 보는 것에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동생은 눈을 뜨고 있으나 나를 알아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게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티눈 치료가 끝나고 아들 녀석이 픽업을 오겠다고 한다.
어제 함께 못먹은 정년퇴직 기념 식사를 쏘겠다고 해서 막내동생 부부도 불렀다.
우리가 늘상 친숙하게 다니던 백화점 식당가가 모두 리뉴얼되어서 처음 보는 식당들 밖에 없었으나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막내 동생의 취향을 고려하고
골고루 조금씩 먹어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적극 반영하여 솥밥집을 선택했다.
아들의 통큰 주문은
보쌈세트에 가지솥밥과 차돌박이 솥밥,
LA갈비 세트에 보리굴비솥밥과 전복솥밥이다.
물론 보쌈과 LA갈비의 양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가지솥밥은 짜장소스같은 느낌이었고 차돌박이, 전복, 보리굴비 솥밥은 예상한 그 맛이었다.
내 입맛에 가장 맛났던 것은 적당하게 달달한 가지솥밥과 LA 갈비였고
막내동생은 혈당 조절을 한다고 쌈채소를 가장 많이 먹었다.
이제 맛난 것을 마음껏 먹을 나이는 지난 것이다. 나나 나보다 어린 동생이나...
조금 조금씩 맛만 본다고 먹었는데도 배가 많이 부르다.
아주 가끔이지만 아들이 사는 밥을 먹는 것은 배가 금방 부르다.
나는 내가 사는 밥을 먹는 것이 가장 마음이 편하다.
누구에게나 얻어먹는 밥은 조금은 불편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들 녀석은 미리 봐두었던 것처럼
티눈으로 고생하는 나를 위해서 앞볼이 넉넉한 신발을 사주었고(사야지 하면서도 못사고 있었다.)
미리 준비한 난화분도 주었다.(난을 잘 키울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보겠다.)
전혀 예상 못한 선물이라
그리고 평소의 아들 스타일이 아니라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다.
시간을 보니 오늘 친정 어머니와 아버지 납골당에 다녀와도 될 것 같았다.
명절이라 나처럼 미리 인사드리러 온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소국을 사고 두 분을 뵈었고
나지막히 퇴직 인사를 드렸다.
오늘의 마지막 약속은
지난 축제에 멋진 무대를 마련해준 졸업생들에게 맛난 것을 사주기로 한 것이다.
무엇을 함께 먹을까하다가
여러 가지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는 뷔페형식의 패밀리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각각의 학업 스케쥴에 따라 시간 맞추기도 어려운 고등학생이라 세시 약속인 점도 고려했다.
대부분 식당들은 브레이크타임 시간이었다.
솥밥이 아직 채 소화되지 않은 상태라 많은 것을 먹을수는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맛있고 기분좋은 식사였다.
쫄면, 고구마구이, 김치찜, 백김치, 기타 등등 먹은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이다.
너무 과하게 달지 않은 김치찜과 길게 찢은 백김치가 가장 맛났다.
참, 다먹은 접시를 수거해가는 로봇이 돌아다니는데 그 사이 사이를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부모님은 말리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그러다가 다친다고...
그래도 그 이야기 이후에는 뛰어다니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어디서든 이렇게 교사 티를 낸다.
식사를 마치고 고3까지의 어려운 시기에 파이팅하라 격려해주고 기념사진을 찍고 났더니 선물을 건넨다.
그림을 잘 그리는 J는 자신의 작품이다.(위 사진이다.)
별을 관측했던 그 날을 그린 것인데
자기들 네명에다가 뒤에서 지켜보는 나의 특징을 잘 잡아서 그렸다.
그리고는 뒷장에 이렇게 써놓았다.
<자신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은 잊지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꿈을 주셨고 또 길을 알려주셨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감사합니다.>
난 단지 J가 태블릿으로 꼼꼼하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을 알았고
UCC 공모전 몇 개를 알려주었고(거기서 대상을 탄 것은 순전히 J의 능력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전문가 특강을 마련해주었을 뿐이다.
항상 즐거우면서도 신중한 녀석 L은 편지를 주었다.
<외부 전시나 체험 일정이 있으면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저를 불러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그때의 기억과 경험이 저를 더 윤택하고 가치있게 만들어줬습니다. 선생님처럼 저의 지식과 경험을 타인을 위해 베푸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나를 지지해주었던
멋진 쌍둥이 형제 S 는 어제 학교 내 자리에 놓여있던 수줍게 놓여있던 붉은 장미 바구니의 주인공이었다.
손수 장미가시를 다듬고 꽂아서 만든 것이라 했다.
주변에 아무리 물어보아도 준 사람을 알 수 없었던 어제의 궁금증은 풀렸으나
장미 30송이를 꽂은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그 의미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선생님의 멋진 인생 2막을 응원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시는 열정에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이렇게 쓰여있었다.
오늘 마지막 일정에도 눈물 몇 방울이 함께 했다. 나에게 눈물이 이리도 많을 줄이야.
미처 몰랐던 일이다.
내일부터는 절대 외식 금지.
설 음식 시작이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장미가 40송이 였고 내 40년 교직생활을 의미하는 것이라는걸.
다시 무한 감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