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의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니
그리고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받게 되니
나의 은사님들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는 그 분들에게 이렇게 살갑게 사랑한다고 감사한다고 표현했던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반성과 함께 학생이었던 나를 되돌아보는 의미로 이 글을 써본다.
유치원을 2년이나 다녔지만(?) 생각나는 선생님이나 기억은 딱히 없다.
빵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왜 쓴 것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만)
노란색 가방을 크로스로 매고 다녔던 기억만 남아있다.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이었던 내가 이럴 정도니
유치원 선생님들께서는 많이 서운하실수도 있겠다.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때 남자 담임 선생님은 기억에 남아있다.
소풍날 뚜껑을 열어놓은 맨홀에 빠진 나를 구해주신 생명의 은인이시다.
그런데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울지도 못했던 생각이 난다.
그때 여자 선생님께서 담임이셨다면
(그 학년에 유일한 남자 선생님이셨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남자 선생님들은 별로 없다. 남자 선생님들이 꼭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재빨리 구조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남녀차별이 아니라 힘으로 나를 끌어올려야 했다는 의미이다.)
나는 더욱 더 심한 외상후 스크레스 증후군이나 아니면 공황장애등에 시달렸을 수 있다.
지금도 가끔 맨홀에 빠진 꿈을 꾼다.
깜깜하고 물소리가 들리고 악취가 진동하는 곳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재빨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4학년과 5학년은 학급 모두가 함께 같은 반으로 진급하는 처음 시도하는 이상한 시스템이었고(장단점이 있는데 단점이 더 많다. 너무 익숙하면 긴장감도 안 생기고 예의가 무너질 수 있다.)
그때의 담임 선생님은 아마도 그곳이 초임교사셨던 이쁘고 젊은 남모 선생님이셨다.
남학생들에게 인기 절정이었다.(지금에도 젊고 이쁜 선생님들은 인기가 많다. 당연하다.)
그리고 똑똑하게 기억나는 6학년때 담임선생님은 5학년 담임 선생님과 발령동기셨던 최모 선생님이셨다.
6학년의 즐거웠던 추억이 많고 졸업 이후에도 친구들과 몇 번 찾아뵜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사범대학생이 되고나서 선생님께서는 명예퇴직을 하셨는데
퇴직 즈음에 찾아뵜을 때 하신 이야기가 아직도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다.
<열심히 했는데 내가 잘못했던 것만 기억에 남아서 너무 괴롭다.>
조금은 울먹이셨던 것도 같다.
<우리한테 하셨던 것을 보면 선생님 그렇지 않으셨을겁니다. 열심히 우리를 위해서 애써주셨던 것을 압니다.>
대학생인 우리는 그런 내용의 답을 드렸던 것 같다. 조금은 위안이 되셨을까나.
이제 선생님의 그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잘 알겠다.
잘했던 것도 물론 기억에 나지만 잘못했던 일의 기억은 참으로 오랫동안 마음을 아프게 하니 말이다.
이 기회를 빌어서 나에게 상처받았던 학생들이 있다면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미워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교육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마음 상하게 하는 말도 가끔은 해야한다. 악역이 힘든 법이다.
중학생이 되니 초등학교에서의 선생님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과목의 특성도 있고 선생님들마다 수업 방식과 특성이 모두 달라서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적응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그 많은 선생님들 중에는
음악실에서 자리를 잘못 앉았다고 나의 볼을 세게 꼬집었던 음악 선생님과
운동장에 집합과 줄서기를 잘못시켰다고 따귀를 올리셨던 체육 선생님
그 분들도 아마 퇴직하실때쯤은 반성과 후회의 날을 보내셨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중3 담임 선생님은 그 당시에 천재라고 불리시던 스마트한 수학 선생님이셨고
고 3의 물리 선생님은 한 여름에도 칼줄을 세운 흰색 긴 와이셔츠를 입고 다니시던 패셔니스타
(체형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만) 천재셨고
고 3 담임이셨던 생물 선생님은 나의 잠재력을 인정해주셨던 다정다감하신 천재셨다.(그러나 수업은 다소 졸렸다.)
대학에서의 지도교수님들에게서는 초, 중, 고의 선생님들과 다른 냄새가 났다.
지극히 제한적인 비즈니스식 대화라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늦은 나이에 박사과정에 들어갔을 때
진심으로 학문적 동료로서 현장교사인 나를 인정해주셨던 허교수님 생각이 난다.
교육학에서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현장 감각이 못지않게 중요한 법인데
교수님들은 그것을 모르시거나 별로 인정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많았다.
허교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진정한 과학교육계의 거성이셨는데 너무 일찍 가셨다.
마지막도 본인답게 깔끔하게 그렇게 가셨다.
금요일.
졸업식 후 수줍게 나에게 편지를 쥐어준 학생이 있었다.
공부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던,
내가 2학년때 담임이었던 수줍은 학생이었다.
<2년 동안 선생님과 많은 추억들이 떠올라요. 저는 과학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정말 × 100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세요. 이건 누구도 반박 못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시간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는 저였지만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주세요. 제가 선생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제자라 정말 기쁩니다. 2년동안 좋은 과학수업, 좋은 담임 선생님이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함께 드리는 스티커는 선생님을 닮아서 제가 한땀 한땀 만들어서 넣은 것입니다. 잊어버리지 말아주세요.>
위의 스티커가 그것이다.
나랑 어디가 닮았다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귀엽기는 하다.
나에게는 그 편지속 내용이 최고의 찬사였고
나는 이렇게 멋지게 은사님들께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였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