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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은 혼밥요리사의 비밀 레시피 121

색다른 설날 브런치를 준비하며

by 태생적 오지라퍼

외식에 지칠 때가 되었다.

아무리 편하고 맛있어도 외식은 외식일뿐.

집밥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

오늘부터는 가급적 집밥을 해먹기로 한다.

그리고 아무리 남편이 항암중이고(시어머님은 아직 모르신다.)

나는 허리가 아프기는 하지만

명절 한끼는 시댁에서 먹어야하니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

물론 어머님께서는 아무것도 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만...


오늘 아침은 후배가 보내준 일출 사진과 함께 시작했다.

부지런하게 6시 40분에 아차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해맞이를 했다고 한다.

아차산은 우리집에서 가까운데 나는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올해는 더더욱이다.

아직도 허리에는 복대가, 발가락에는 티눈이 존재한다.

아침 식사는 베이컨구이와 계란 후라이, 양배추볶음과 닭가슴살 구이(하나는 오리지널, 하나는 양념이다.)

그리고 감자크림 스프였다.

요새 아들 녀석은 또다시 식단을 기록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크게 먹는 양이나 종류가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다만...


식사를 마치고는 야채볶음과 나물 위주의 명절맞이 음식을 준비했다.

있는 야채를 모두 길게 썰어서 볶아주었다.

설날 브런치 비빔밥용이다.

제사를 지낼때도 돌아가신 시아버님은 제사상에 올라간 나물로 고추장 넣지않고

하얗게 나물비빔밥을 대접에 쓱쓱 비벼고 아들 녀석에게 나누어주곤했다.

남편과 시동생은 그 비빔밥을 절대 먹지 않았으나(이유는 알 수 없다.)

손주들은 좋아라 했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당근, 양파, 호박, 양배추, 콩나물,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나물을 준비했다.

물론 양은 절대 많지 않다.

한 끼 잘 먹고 남편이 회사에 가져가서 남은 것을 먹으면 딱맞을 정도이다.

그래도 그것을 하고 나니 허리가 아파서 삼십분은 누워있었다.


이번 명절은 큰 맘 먹고 전을 부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내 결정이다.

남편에게도 좋지 않고(너무 기름지다.)

아들 다이어트에도 별로이고(너무 고열량이다.)

사실 딱히 좋아하는 음식도 아닌데

만드는 나만 너무 힘들다.

전을 만들지 않는 명절은 내 인생에 처음이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어간다.

그렇다고 비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메인 음식은 버섯과 야채 듬뿍 불고기이니 말이다.

간을 약하게 해서 내일 항암주사를 맞는 남편 보양식으로 준비한 것이다.

물론 남아있는 가자미 2마리도 구울 것이다.

그리고 그 야채비빔밥과 불고기와 어울리는 국은 소고기무국을 할 것인지

설날이니 떡국을 할 것인지 아직 고민중이다.

사실 하얀 음식들이니 국은 약간 매콤한 것이 격식에는 맞는다만 남편이 매운 것은 먹기 힘들다.

사실 떡국은 신정에도 먹었었고 소화가 잘 안된다는 단점이 있다.

내일까지 신중하게 고민하고 남편과 아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하려 한다.

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선호한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일방적으로 내가 먹고 싶은 된장 베이스의 꽃게탕을 준비했다.

내일 아침은 맛집에서 포장해왔다가 냉동 보관했던 설렁탕이다.

저녁은 항암주사를 맞고 오는 남편에게는 소화가 쉬운 죽 종류를 해주려 하고

아들과 나는 잔반처리용 볶음밥 예정이다.

이제 나는 방학이고

본캐인 교사를 잠시 접고(잠시일지 오래일지는 알수없다만)

부캐인 혼밥 요리사로 돌아가

남편의 빠른 회복을 위한 음식과

아들 녀석의 다이어트 건강식과(나처럼 평생을 다이어트 하는 중이다.)

그리고 나의 기분을 UP 시켜주는 별식을 만들어 먹는 시간으로 알차게 활용하려 한다.

일단 오늘의 꽃게탕은 성공적이다.

(내가 맛본 것으로는 그런데

남편이나 아들도 좋아할지는 아직 모른다.)

양이 꽤 많아서 동생네도 나누어주고 싶은데 거리가 너무 멀다.

동생과 가까이서 살고 싶다.

늙으니 근처에 지인이나 형제가 있기를 절실하게 바라게 된다.

바라면 이루어질것이다.

일단 꽃게탕부터 맛나게 먹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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