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사진을 좀 찍어보려한다.
마지막 학교에서의 퇴임관련 모임은 마무리되었지만
그 이전에 만난 인연들과의 모임은 명절 끝나면서 시작된다.
그 모임 중 가장 오래된 인연은 목동지역 학교에서 만난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오랫동안 같이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스쿼시, 골프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키우고, 같이 고민을 의논하고, 같이 분함을 나누고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방학때는 바다로, 스키장으로 놀러다니고
어쩌면 남편보다도 우리 아들 녀석과 더 많이 놀아주었던 사람들과의 모임이다.
그런데 무엇을 해주려는지 독사진 한 장을 보내달라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본 사람들인데도 나를 너무도 모른다.
사진찍는 것을 그리 싫어하는데...
마지못해 폰에 있는 사진들을 뒤져보기 시작한다.
당연히 최근에 혼자 찍은 사진은 없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어서 찍은 기념 사진들은 있는데 이런걸 보내면 개인정보유출이다.
나는 공직자로서의 직업 정신이 매우 투철하다.
선글라스를 낀 사진을 보내니 안된다고 한다.
마스크를 낀 사진을 보내니 그것도 안된다고 한다.
아무리 폰에 있는 갤러리를 뒤져보아도 나의 얼굴 정면이 나온 풀샷은 없다.
증명사진 모아둔 것을 찾아본다.
너무 젊었을때의 사진뿐이다.
최근 옮긴 학교에서의 졸업식 앨범 사진은 파일로만 보내주었었는데
내가 받아두지 않은 것 같고(늙은 내 얼굴을 사진으로 확인하는 것이 싫다.)
젊었을때 파릇파릇한 사진을 보내주자니 양심에 걸린다.
몇 개를 보내도 다 퇴짜를 맡고나니 이제 포기했나보다. 알아서하겠다 한다.
사진을 박아서 무슨 무슨 패를 만드는 그런 일은 시대에 맞지 않는데 역시 구식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진을 뒤지다보니 2016년 사진부터 나온다.
물론 사진의 양은 많지 않다.
이 기회에 사진을 정리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지하철 타는 시간에 하면 일주일 정도면 되겠다.
옷이나 물품 버리는 것보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
사진은 추억이다.
내 사진의 절반 이상은 꽃이나 하늘, 구름, 달 사진이고 나머지 절반은 학생들의 활동 사진이다.
그리고 아주 드물게 돌아가신 엄마와 아버지 사진, 나의 어렸을 때 사진, 아픈 동생 사진, 아들 녀석 어렸을 때 사진 등이 있었다.
참 아들 녀석 전 여친 사진은 어제서야 모두 삭제했다.(현 여친에 대한 도리가 아닌듯해서)
사진을 정리하는 내 기준은
언제 찍은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디서 무엇을 할 때 찍은 것인지가 선명한 사진은 남겨둔다.
애매모호한 사진은 과감히 삭제한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남편과 찍은 사진이 정말 없구나.
이번 설날에 시댁에서 시어머님과 남편과 사진을 한 장 남겨야겠구나.
오늘은 남편의 세 번째 항암주사를 맞는 날이다.
두 번째와 마찬가지로 꼭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폐를 끼치고 싶지않은 그 마음을 알겠다만)
6시 40분 집 앞 버스 정거장까지만 배웅했고
혈액 검사후 먹으라고 사과와 한라봉을 각각 행운의 7개씩 잘라넣어주었고
달지 않은 현미 과자를 억지로 넣어주었다.
큰 숙제를 하러가는 기분이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은 병원으로 출발했다.
힘들면 연락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아마도 앞의 두 번째처럼 지하철을 타고 오리라 생각한다.
그게 남편의 스타일이다.
내 스타일을 앞세워 사진 찍는 것을 너무도 싫어했던 나를 반성하며
이번 설날에는 가족 사진을 한 장 찍어야겠다고 한번 더 다짐한다.
더 늙기 전에 말이다.
위의 사진은 이전학교 축제때 복면가왕을 했던 때 사진이다.
학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마지막 날이었다.
올 축제에서 복면가왕을 해볼까 생각했었는데 뮤지컬로 인해서 시간이 너무 길어질까봐 뺐었다.
잘했다.
저 사진속의 날보다 성대도 많이 늙어서
예전처럼 노래가 안된다.
그렇지만 그날의 기억은 또렷하다.
그 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 그것이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