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와 질병은 패션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한다.
마지막 학기말 1월에는 좀 멋지게 입고 꾸미고 다니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었다.
학생들에게 너무 늙은 구닥다리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바램때문이었다.
그런데 올 1월은 A형 독감으로 무지 아팠고 그래서인지 너무도 추웠다.
할수없이 기모가 들어간 후드티와 누빔 바지를 교복처럼 입고 다녔었다.
올 1월의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도저히 어쩔수는 없었지만...
오늘은 나와 아들의 옷장 정리에서 나온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옷과 신발을
세 번째로 무상수거 플랫폼에 전달하는 날이고(이른 아침에 이미 상자 네개를 수거해갔다.)
이제 당분간은 정리할 옷은 없어보이는데
아직도 옷장에는 옷이 가득하다.
먹을 것에 대한 욕심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졌는데
(내가 많이 먹지 않을 뿐 좋은 먹거리에 대한 욕구는 그대로이다.)
옷에 대한 욕심은 아직 조금은 남아있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그러나 옛날처럼 충동 구매하지는 않는다.(스트레스 해소를 옷 구입으로 했던 것도 같다.)
겨울철 집에서 입는 모든 옷에 걸쳐 입었던
조끼 두 개도
장보기 전담용 의상인 흰색 얇은 롱패딩도
한 때 골덴 바지 위에 자주 신었던 내 마지막
검정색 부츠도
오늘 영원히 내 곁을 떠났다.
누구에게인가 다시 쓰임을 받았으면 한다.
이번 주 다양한 후배들과의 약속에도 너무 추워서 어떤 옷을 입을까 무엇을 신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없다.
따뜻하고 가벼운 옷차림이 최고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멋쟁이는 겨울에 판가름날 것 같다.
모두가 검정색 롱패딩을 입을 때
어떤 포인트를 주는가가 그 사람의 패션 감각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자나 머플러의 중요성이 부각된다.(위 그림에서도 머플러가 멋냄의 포인트라고 나는 생각한다.)
평생 모자 쓰는 것을 좋아라하지 않았다.
큰 얼굴과 머리 때문에 맞는 모자가 별로 없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고
머리카락이 납작 눌리는 것을 좋아라하지 않는 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운동을 할 때 마지못해서 햇빌 가리개용으로 썼을 뿐이다.
그런데 올해 막강 추위를 넘기면서
왜 어르신들이 모자를 쓰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머릿속까지 바람이 파고 들어오더라.
따뜻한 모자가 당장은 없으니
올해는 후드티 모자와 패딩 모자로
일단 버텨야 하는데
그러면 모양새가 영 나지 않는다.
(그냥 추위에 굴복한 의상이다.)
너무 늙어보이지 않고
머리통이 너무 커 보이지 않고
그러면서도 보온 효과가 높은 모자를 사는 것이 나의 요즈음 쇼핑 목표 중 한 가지이다.
반대로 머플러는 내가 평소에도 좋아라 하는
패션 품목이다.
겨울옷의 필수품이고 아마 여름 빼고는 나는
목을 드러내놓는 것을 싫어라하기 때문에(쉽게 목이 아프다.)
머플러는 나에게는 패션 품목이라기보다
필수품의 용도로 사용된다.
그런데 겨울용 모직 머플러 중에는 조금 까칠거리는 것들이 있다.
가격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을 하고 다니면 피부 트러블이 일어나게 된다.
색과 디자인과 길이도 중요하지만(목을 두어번은 감을 정도의 길이어야 따뜻하다.) 촉감이 더욱 중요하다.
올해 1월 방과후 특강에서는
손뜨개로 머플러 뜨기 특강을 진행했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여 어머니에게
머플러를 떠서 선물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이제 치매 방지용, 손의 잔 근육 유지용으로
중학교 시절에 하다가 말았던 손뜨개를
다시 시작해볼까도 생각해본다.
색을 잘 섞어서 1년에 한 개의 머플러를 완성하고
그 머플러로 해당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는 멋지고 훈훈하다.
그 옛날 친정 엄마가 한땀 한땀 떠주셨던
조끼와 머플러와 장갑이 부쩍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이제 온몸을 잘 감싸고
연구 계획서 및 자료를 프린트하러 학교에 들렀다가
장학사 및 교장 교감님들의 인사 발령을 확인하고
지구과학 동교과 대학 후배들을 만나러 길을 나서봐야겠다.
오늘의 만남 장소가
지하철역에서 1분 컷인 곳을 예약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잘 한 일이다.
(저녁 약속 나가는 길에 너무 추워서
을지로 4가역 지하상가옷집에서
빨간 쉐타 하나를 사서
하나 더 껴입었다.
충동구매 아니고
추위로 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처절한 방안이었는데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