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있었던 경우와 만나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이다.
출근 시간에도 쏟아지는 눈
어제 저녁 퇴근 시간에 만났던 눈 폭탄은 안전을 위주로 한 선택을 했었는데
오늘 아침 출근 시간에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또 놓이게 되었다.
큰 길을 내다보니 대부분 눈이 녹고 정리가 된 것 같아보였고
(집 앞에서 큰 도로가 보이는 뷰라는 점이 이럴 때 유리하다.)
아들 녀석이 오늘 외부 출장이라 회사에 가지고 가야할 짐이 많았고
출근 시간 시점에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
그리고 어제는 야간이고 오늘 주간이라는 점이
어제 퇴근과는 약간은 다른 변수였다.
회사까지는 아들이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만 내가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고 집을 나섰다.
아들 회사에 도착할때까지는 조심 조심 운전하는 것 이외의 별다른 변수는 없었다.
세상은 늘 나에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왜 내가 집으로 차를 몰고 오기 시작하면서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 것인가?
눈 때문에 시야를 가리는 것도 그렇고
시야 확보를 위해 윈도우 브러쉬를 돌리는데 오른쪽 브러쉬에서 끽끽대는 거칠은 소리가 나는 것도 거슬리고(오래되었다. 바꾸어야 하겠다.)
세상에나 눈이 번호판 주위에 닿으면 주차위험 감지센서가 작동하는 것도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주로 신호대기중에 울린다. 대단한 소음이다. 민감하기도 하다. 눈송이에도 반응하다니.
평소에 운전을 할때는 모든 도로가 다 평지인 듯 보이나(아주 심한 언덕이나 내리막을 제외하고는)
오늘처럼 눈길 운전을 해보면 도로에도 완전한 평지는 거의 없고 다들 미세하지만 경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 내리는 오르막길은 빗면을 오르는데 필요한 힘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처럼(물리 부분 시험에 자주 나온다.) 평소의 힘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고(그렇다고 엑셀을 너무 꽉 밟으면 바퀴가 헛돌게 된다.)
눈 내리는 내리막길은 제동거리가 달라지므로(도로와의 마찰력이 변한다.)
살살살 움직이다가 서야만 한다.
가급적 정지 신호에 안 걸리는 것이 최선이다.
평소에는 못 느끼던 운전의 위험 요소가
배로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안내에 따르는 것이 맞다.
그런데 신호 대기중에 곰곰 생각해보니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도로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존재한다.
나만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다른 옆 사람들은 모두 평온한 평지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함정이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니다.
오늘 나와 같은 시간대에 운전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모두가 오르막, 내리막길에서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오늘 같은 상황에서 유턴을 할때는 더욱 위험 요소가 발생할 것 같아서
(단지앞에서 유턴을 해서 들어오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일부러 조금 멀리 돌아서 유턴하지 않고 귀가하는 길을 택했는데
아뿔싸. 그 길이 엄청 막히는 길이고
음지라 눈이 잘 녹지 않고 쌓여가는 길이었다.
같은 눈이 내려도
해가 드는 양지에는 눈이 쌓이는 속도가 더디고 음지에는 눈 쌓이는 속도가 배가 된다.
오늘 눈 내리는 아침 운전을 하면서
눈과 도로와 빠르기와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인 상수와 변수 공부를 복습한다.
할 수 없다. 나의 선택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그리고 이상한 운전자를 만나지 않는 행운을 빌 수밖에...
자동차사고는 항상 상대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나만 잘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랫만에 두 손을 꼭 모은 나의 기도와
극조심스런 운전과
행운이 함께하여 나는 무사히 귀가에 성공했다.
아침도 먹지 않고 나선 눈 내리는 운전길은
인생의 오묘한 진리를 깨닫고
과학 평가 문항을 되새겨 보고
지하철의 고마움을 새삼 느낀 시간이었다.
비슷한 경우에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이다.
모든 것을 결과론적이지만 안전하게 귀가했으니 천만다행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엷은 커피 한 잔을 먹는데
슬며시 잠이 쏟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