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별로 없다.
학교를 다니던 그 오랜 기간 동안
일요일 오후란 참으로 중요한 시간이었다.
휴일의 마지막이라 아쉬움도 무지 무지 크지만
새로운 한 주일에 해야 할 일들을 미리 준비하고 체크하는 시간이어서 더욱 소중했었다.
빼곡이 일정을 적어놓은 달력을 보면서
월요일에 출근하면 무엇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지를 미리 시뮬레이션 해보는
업무 처리도를 머리에 정리하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나에게는...
그런데 이제 그 루틴이 필요가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일요일 오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우선 다음 주 일정을 정리 해본다.
월요일에는 남편의 항암이 있고
나는 의사선생님을 함께 만나볼까하고 있고(물론 남편은 싫다고 할 것이다만)
한달 반을 버티게 해줄 머리 염색이 예약되어 있다.
화요일은 아무런 일도 잡아두지 않았다.
항암을 하고 온 힘든 남편의 밥을 차려주는것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수요일 점심에는 훌륭한 후배들이 이 근처까지 찾아와서 점심을 함께하자 하니 고마울 따름이고
목요일에는 서울시교육청 교사 대상의 생태연수를 ZOOM 으로 진행해야 하고
(나의 공식적인 마지막 연수일 수 있으니 항상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겠다.)
그 연수를 위해서 학교를 방문하여
다음 주 녹색기후상 수상에 참여할 학생들의
중식 제공 관련 결재를 처리할것이고
그 결재를 도와주실 실무사님들과(이미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오늘 새로 입수한 고급 정보 확인차
학교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을 예정이다.
토요일에는 에코스쿨 공간 구축 관련 대구 출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도 공식적으로 마지막 출장일 수 있겠다.)
지난 2주간에 비하면 뭐 약소한 일정이다.
스케줄 머리 정리를 끝내고서는
녹색기후상 수상을 기념하는 브로셔에 실을
우리학교 공적조서 파일을 마무리해서 보냈고
교사연구팀 계획서 파일도 후딱 마무리해서
연구비 지원을 해준다는 단체에 보냈으며
인스타에 나의 요즈음 근황을 알리는 음악을 넣은 사진을 하나 올렸고
1주일만에 아쉽게도 원상복귀된 브런치의 조회수를 슬쩍 살펴보았다.
(지난 1주일은 꿈만 같았던 조회수였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제 자리를 찾았다.)
날이 풀려서 남산을 한바퀴 돌고 온다는
항암 환자인지 산악인인지 알 수 없는 남편이 집에 오면
(내일 다시 주사를 맞으면 산에 가고 싶어도 당분간은 못 갈 테니 잔소리하지 않으련다.)
기운차리라고 준비한 양념장어구이랑 야채샤브샤브로 저녁을 차리면 되겠다.
딱히 월요일 이른 출근을 위해서 투쟁적으로 잠을 청해야하는
일요일 저녁이 아니라는 것이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그리고 당분간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는 일요일 오후에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을 듯 하다.
(오늘 나의 인스타에 올린 사진이다.
누가 봐도 편안하고 행복해보이는 사진일 것이다.
그리고 배경 음악도 데이식스의 Happy이다.
지나친 강조는 부정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이지는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