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가보자고 마음은 먹었는데...
2025년 3월 4일은 나에게 매우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는 날이다.
올해는 3월 1일이 토요일이라 2일 일요일 3일이 대체휴일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나도 휴가인셈이다.
올해 모든 학교는 3월 4일이 개학일이고
나는 그 날이 되어서야 정년퇴직을 실감하게 될 듯 하다.
지금도 이렇게 안바쁜 2월이 처음이라
(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한것없이 먹고 자고 했다)
조금씩은 실감중이지만...
나는 2월 28일까지는 공식적으로 방학이고
41조 연수중이다.
2월 17일 교사로서는 마지막 월급을 받았고(연말정산이 포함되어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17일이 아니라 25일에 공무원 연금을 받는 연금수급자가 된다.
이렇게 많은 것이 바뀌는 2025년 3월 4일의 느낌이 어떨까?
아직은 가늠할 수 없다.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3월에 여행을 떠난다고 들었다.
1,2월에는 방학중이라 비행기며 숙소며 모두가 최고가인데
3월이 되면 놀러가는 것이 가능한 사람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줄어들므로
모든 것이 할인이 된다는 점이 매우 유혹적이기는 하다.
실제로 제주행 비행기표를 찾아보니 대형항공사가 3만원 남짓이고 이벤트 행사 안내도 많이 보인다.
외국을 다녀오는 건 항암중인 남편 일정과도 맞지 않고
(물론 다녀오라 하겠으나 내 마음이 불편하여 싫다. 특히 가고 싶은 곳도 지금은 없다.)
3월 2주차에는 외국 출장이 있는 아들 녀석 일정도 고려하면
(고양이 설이를 혼자 집에 놓아둘 수는 없다. 고양이 학대이기도 하고 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3월 4일에 잠시 어디를 다녀오는 것이 딱이다.
그런데 동행이 없다.
같이 가려고 했던 친구는 선약이 있다.
혼자 여행을 가면 좋은 점은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이고
나쁜 점은 내 마음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올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딱 한번의 경험이 있는데 그랬다.
그런데 존재감과 무게감이 남다른 2025년 3월 4일을
집에서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은 또 기분이 꿀꿀할 것만 같다.
3월의 비어있는 탁상달력을 보니 그런 마음이 든다.
오늘 아침. 제주도 여행 유튜브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에게 익숙한 것은 2월의 제주이다.
교사들은 여름방학 아니면 겨울방학 기간의 제주를 보는 것만 가능하다.
그나마 여름방학은 짧고 피서철이고 성수기의 극치라 가는 것이 쉽지 않다.
가끔 학생들을 모시고 수학 여행으로 봄과 가을의 제주를 방문할 수는 있으나
이때는 인솔이라는 투철한 직업 정신으로 정신이 반쯤은 나간 상태라
제주의 아름다움이나 멋짐, 맛남을 제대로 느끼고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것이 끝난 후 2월이 가장 익숙한 제주인데
소중한 제주의 날들이었으나
아쉽게도 춥고 바람 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4월의 혼자 찾은 제주는 정말 황홀했고(눈물 났다고 이미 앞 글에서 적었다.)
5월의 제주는 결혼식 후 신혼여행이었고
작년 8월에 퇴직자 연수 차 여름의 제주를 찾았었다.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 연수였다.)
3월의 제주를 고민해보는 일 만으로도 갑자기 3월이 의미있어진다.
그런데 제주 여행으로 검색한 유튜브를 보니 주로 먹는 것만 나온다.
하루에 몇 번을 먹는지 모르겠다.
밥먹고 디저트 먹고 차 마시고 술 먹고 야식먹고...
나는 저렇게 많이 먹을 수 없다는게 여행의 큰 단점이다.
가끔은 1인분을 팔지 않는 식당들도 있다. 갈치조림 같은 거다.
제주에 갔는데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웬지 아닌것도 같고.
여하튼 3월 4일의 중압감과 무게감을 이겨내보러 혼자만의 제주 여행을 계획해보려 한다.
그러려면 간단한 짐을 쌀 수 있는 캐리어를 하나 사야한다.
지금 캐리어는 너무 크다.
승무원들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사이즈의 멋지고 튼튼한 캐리어 하나를 장만해야겠다.
한달 살기는 사정상 불가능하니(외국 한달살기를 수행하는 멋진 제자가 부럽기만 하다.)
2박 정도 일정의 간단한 여행은 즐겨도 되지 않을까?
갑자기 신나는 아침이다.
별다른 계획 없이 스쳐가는 여행도 아쉽기는 하지만 괜찮을 듯도 하다.
신혼여행도 아니고 수학여행도 아니고
혼자 여행인데(이번에는 버스 여행을 즐겨볼까 하는데)
심심하니 담담하게 여유롭게 그렇게 가면 되는 것 아닐까?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다양한 제주 숙소와 제주 맛집을 보여준다.
너무 많아서 선택 장애가 저절로 생긴다.
며칠 봐야겠다.
일단 작은 캐리어나 맘에 드는게 있었으면 좋겠다.
서귀포 지역을 볼지 제주시 지역을 볼지는
오늘 안에 정해야겠다.
비행기표와 숙소만 정하면 여행 계획 2/3는 결정된 것 아니겠나?
초보 혼여자는 이렇게 몰라서 담대하다.
(글을 쓰고 마일리지로 제주행 왕복 항공권을 끊었다.
숙소도 예약했다. 혼자하는 버스 여행이니 서귀포쪽은 다음 기회에. 야호 3월 4일에 나 할 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