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꽃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살면서 이리 많은 꽃을 받은 한 달이 있었을까?
졸업과 입학때도 이렇게 많은 꽃을 받은 기억은 없다.
상을 받았을때도 한 두 개 정도 손에 쥘 수 있을 정도의 꽃만 받았었다.
연말 연예대상 수상자가 된 느낌을 알 것도 같다.(순전히 꽃의 양만 놓고 본다면 그렇다.)
1월 20일 공식적인 퇴직 행사 시작일과 함께
정말 다양한 꽃을 받았다.
형태도 다양하여 대부분은 꽃다발이었으나
바구니의 형태도 화분도 있었다.
이 시기의 꽃 값이 비싼 것을 알고 있는데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꽃을 좋아라 하고 사진도 대부분 꽃이 피사체라는 것을 지인들은 다 알고 있지만
꽃 선물을 그리 좋아라 하는 편은 아니다.
고양이 설이가 우리집에 오기 전까지는
한 송이씩이라도 그 시기의 대표꽃을 식탁에 꽃을 두는 낭만을 누렸었으나
혹시 어린 설이에게 꽃의 향기가 나쁘게 작용하지는 않을까 싶어서
집에 꽃을 두는 것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한 달 정도는 정말 그럴 수가 없었고
나의 고양이 설이도 이제는 많이 컸고(나와 같이 늙어가는 중이다.)
받자마자 꽃을 버릴 수도 없어서 하나 둘 집 구석구석에 놓아두었었다.
처음에는 꽃에 반응을 보이던 설이도
(꽃보다는 포장한 비닐에 더 관심을 보였다. 바스락 거리니 장난감인줄 아나보다.)
이제는 그런가보다 하고 별달리 냄새를 맡거나
코를 부벼대지는 않는다.
덕분에 한 달 동안 멋진 꽃과 함께 하는 우아함을 누리고 있다.
오늘 시든 꽃들을 정리하고 나니
이제는 마지막 남은 꽃들과
아들 녀석이 뜬금없이 사준 축하난만 남았다.
아마도 금방 버려지는 꽃이 싫어서 난을 사준 모양인데
나를 잘 안다면 차라리 생명력이 질긴 막 자라는 공기정화식물을 샀을텐데
아쉽고 금방 죽일까봐 무섭기도 하다.
모든 종류의 꽃을 다 좋아라하지만 특히 달리 보이는 꽃이 있다.
노랑색 꽃이다.
친정 엄마가 노란 꽃들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엄마 생신날이면 딸들이 모두 노란 꽃을 사들고 친정집에 갔었다.
나는 사실 노란색에 대한 거부감이 살짝 있는 편이었다.
워낙 통통했던 시절
노란색은 부피를 더욱 크게 하는 색이라
노란색 옷을 입어본 기억은 거의 없고
심지어 노란색 구두, 운동화, 우산 이런 것도 가져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보라색 꽃의 몽환적인 느낌을 좋아라하나 어머니는 오로지 노란색 꽃을 좋아라 하셨다.
그랬던 나에게 노란색 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계기가 있는데
2014년 4월 특별학습 연구년을 신청하여 학교에 나가지 않고 연수를 받고 있던 그 때
평생 처음으로 제주에 혼자 여행을 갔던 날이었다.
명목은 여름 방학때 지도할 과학캠프 장소 답사였다.
2013년 부산에서 과학캠프를 진행하여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었다.
2014년 나는 학교에서 잠시 나와서 쉬고 있지만
토요일에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하러 학교에 나갔고
과학 캠프를 제주에서 해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아래 답사를 나선 것이었다.
4월의 제주에 내려서 공항에서 렌트카를 찾고 어디론가 달리고 있는데
내 눈에는 온통 노란색 꽃만 보였다.
아마도 한창인 유채꽃이었으리라.
그리고는 왜 그랬는지 지금도 알 수는 없지만
눈물이 차올라서 한동안 눈물을 훔치면서
제주 해안도로를 천천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아마 그 즈음에 학교에서의 힘든 일로 승진을 포기하기도 했었고
답답한 여러 가지 일들로 힘이 들어서였을수도
아니면 정말로 그 이쁜 노란꽃들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여하튼 벚꽃도 많이 피어있던 4월의 그 아름다운 제주에서
나는 유채꽃을 비롯한 기타 노란꽃에 매혹되어
2박 3일의 일정 내내
노란꽃 사진을 찍느라 열심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답사한 곳들을 모아서 과학캠프 일정을 마무리했는데
얼마 뒤 정말 가슴아픈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면서
제주 과학 캠프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 이후로 나에게 노란꽃은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지지해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잘 살펴보시라.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작고 소중한 노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꽃들은 아마도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이렇게 속삭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
특히 학교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이제 열흘 정도가 남아있다.
그래도 올해는 개학일이 3월 4일이니 조금은 더 여유가 있겠다.
4일에 개학하는 해는 내 기억에는 없다.
그만큼 새로운 학기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새로운 시작이다.
나에게는 전혀 바쁘지 않은 시작이긴 하다.
오늘의 그림은 무슨 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엄마가 보시면 좋아하셨을 노란꽃을 무턱대고 그려보았다.
한 달 뒤 엄마의 다섯번째 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