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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제주 episode6.

운명이다. 모든 것은.

by 태생적 오지라퍼

여행 마지막 날은 조식뷔페로 시작하는 것은 국룰이다.

해외 여행을 좋아라 하셨던 친정 엄마는

여행 중에 뭐가 제일 좋았냐 물으면

매번 조식 뷔페라 하셨다.

남이 차려주는 맛난것을 왜 그리 조금 먹냐고

본전 생각난다고 나를 타박하시곤 했다.

오늘 나의 아침 접시를 보셨다면

또 혀를 끌끌 차셨을게다. 그것도 여러번.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으면 잘 못먹는 유형이다.

전투력을 높이려

더 많이 먹어두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나처럼 신경쓰느라 잘 못먹는 사람도 있다.

오늘 오전에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고

다행히 많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역시 착하게 살아야 한다. 도움을 준 분들 고맙다.)

시간내에 무사히 파일 발송까지는 성공했다.

그 이후의 것들은 운명에 맡겨야 한다.

내가 발버둥치고 노력해서 할 수 있는 만큼은

내 몫이나

아무리해도 시기가 맞지않거나 무언가가 틀어지는 일이 꼭 있다.

운명이다. 지나친 운명론자 같기는 하다만.


오전 일을 마치고는 마지막 힐링에 나섰다.

동문시장과 근처 미술관 두 곳 방문이 계획이었는데

그 사잇길에 운명적으로 만난 두 공간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한 곳은 언덕길 초입에 있는 스지곰탕집이다.

꼬마건물 1층에 그냥 깔끔하게 곰탕이라고만 쓰여있다.

그리고 그것만 판다.

자신있고 집중하고 있다는 거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검색해보니 맛집으로 소문나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한 곳은 위 사진을 찍은 제주지방기상청 건물이다.

언덕 골목에 숨어 있는 곳인데

계절을 알려주는 표준나무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의 벚꽃나무가 만개하면 <제주 벚꽃 만개> 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게 된다.

단풍도 있고 매화도 있고 물론 동백도 있다.

그리고 제주 날씨의 특징을 정리해놓은 게시판도 있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

제주 입도 3일 중 처음으로 해가 나오기도 하고

선글라스가 필요할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날씨 요정이 아닌게 확실하다.

대기과학이랑 코드가 안맞는다.


그 미술관은 여전히 빨간 색이고

오늘은 두 곳 모두 관람에 성공했고

한 번 둘러보고 영감을 받을만했.

조금 무서운 전시물도 있었. 진짜 사람인 줄.

동문시장은 여전했으나

사람이 많지는 않았고(김성근의 겨울방학 촬영때는 많던데)

딱히 사고 싶은 것은 없었다.

옥돔 말린것을 배송시킬까 했으나

생각해보니 가자미와 볼락이 냉동실에 있다.

퇴직과 함께 물욕도 사라진게 틀림없다.


지금은 오랫만에 공항 라운지이다.

마일리지를 통크게 질렀다.

편한 좌석을 타보려고 말이다.

언제 타보겠나 해서.

핸드폰 충전도 하고

오랫만에 틀어놓은 티비의 뉴스도 보고

과자도 집어먹다가 이빨도 닦고

느즈막히 들어가려한다.

면세점 쇼핑할것도 없고

이틀간 잠을 설쳐서 졸리기도 한다.

그 좋은 곳에서 왜 잠을 못잔거냐?

엄마가 들으시면

또 혀를 끌끌차고 눈을 흘겨보실것이다.

돈이 아깝다면서 촌스럽다면서.

엄마는 눈을 흘겨도 미인이셨다.


(비지니스석은 엄청 넓고 엄청 좋더라.

돈의 힘을 누룰 수 있는건 어쩌면 운빨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제주의 기를 받아 동문시장에서 로또 한 장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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