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제주 먹거리 정리편
제주에 가기전 무한 반복으로 제주 맛집 유튜브를 보았다.
보았다고 하기에는 그냥 틀어두었던 정도이다.
설거지 하다가도 보고 일하다가도 보고
여하튼 오다가다 본 것은 많다.
그런데 딱히 가봐야지 먹어봐야지 결정한 것은 없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무엇을 볼 것인가를 결정해야
그 주변에서 먹을 것을 정할텐데 그것조차 정한 것이 없었다.
화요일. 그렇게 막연하게 비 내리는 제주에 내렸다.
비행기 타기 전 공항에서 야채 김밥 다섯 알을 먹긴했으나
막상 호텔 예약을 확인하고 캐리어를 맡기고 나니 긴장이 풀린 듯 배가 고파온다.
비가 와서 미술관 밖에 갈 곳이 딱히 없는 듯하여 저지리 예술인마을 쪽을 행선지로 잡고 택시를 불렀다.
밥을 먹고 미술관 투어를 할 것이라 이야기하고
식당이 있는 곳에 내려달라 부탁드렸더니
예술인 마을에서 한 정거장쯤 더 지난 저지오름 입구쪽에 내려주었다.
(예술인 마을에는 식사할 곳이 두 곳 정도밖에는 없더라. 나중에 걸으면서 확인해보니)
배는 많이 고프지만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나름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는 스타일은 아니고
맛집을 찾아내는 촉이 조금은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어제가 대체공휴일이어서인지
오늘이 휴일인 식당들이 꽤 있다.
먼저 중국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사람이 꽉 차있다.
맛집인 듯 하나 일단 대기해야 하고
제주까지 왔는데 첫 끼를 볶음밥을 먹는 것으로는 타협하기가 싫어서 과감히 패스한다.
아래쪽으로는 더 이상 눈에 띄는 식당이 없다.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한다.
한 곳 느낌이 있는 식당이 있는데 또 휴일이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아까 그 중국집을 다시 갈까 하는 순간에
내 눈에 뜨인 곳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닐하우스 같은데 맛집촉이 발동한다.
대기 2번째 쯤은 참을 수 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봤던 맛집 유튜브에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대기표가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었다.
커다란 나무 주걱에 숫자를 써서 대기표로 나누어주는
그러니 마켓팅에는 무언가 차별화 전략이 꼭 필요한 법이다.
갈치구이 2점(그다지 도톰하지는 않았다만)
고등어 무 조림(내 양에는 맞는데 다른 사람은 적다고 할 듯)
그리고 성게 냄새가 약간 나는 미역국(성게알이 왕창 들어간 그런 것은 아니다.)과 밑반찬들.
11,000원의 가격에 이 정도면 가성비가 우수한 편이다.
그 중에 내가 가장 맛나게 먹은 것은 콩나물인데 고춧가루 적당한 시골 밥상 고유의 맛이었다.
저녁은 오늘 제주로 부부가 여행을 온 친구와 하귀초등학교 근처에서 만났다.
다행인지 친구 남편은 오겹살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신혼여행을 제주로 와서도 오겹살을 안먹겠다하여
첫 부부싸움을 할 정도란다.
그런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니 과감히 남편을 버리고 나를 택하여 오겹살을 먹으러 나와주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애월-한담공원 근처까지
해변 산책을 유유자적 즐기다가
유명한 오겹살집에 들어가려 했으나
비가 추적추적 꽤 내린다.
우리가 뭐 애절한 연인도 아니고
멋을 찾거나 영상을 찍는 20대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겠나
바다가 보이는 오겹살집이면 되었다.
오겹살이라 너무 두꺼운 것이
나이 든 우리에게는 문제인데
그 직원은 젊어서 그런걸 모른다.
듬성듬성 잘라서 대강대강 구워준다.
괜찮다.
천하무적 아주머니 두 명이 더 잘게 잘게 잘라서
충분히 더 구워서 먹었다.
함께 나온 호박, 꽈리고추, 버섯 구운 것이 더 좋았다.(나는 비건이 아닌데)
멜젓도 좋았지만(난 그 맛을 제대로 아는건 아니다.)
요새 고기에 와사비 살짝 올려 먹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그 집은 김을 깻잎처럼 간장에 재워둔 것이 있었는데 그것도 괜찮았다.
저녁은 친구가 굳이 퇴직 기념이라고
오겹살을 자기가 훨씬 더 많이 먹었다고 사주었고
우리는 조금 해변을 걷다가 바다가 보이는 통창 카페에 들어가서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마침 그 카페는 우리가 독채 전세를 낸 셈이었고
음악도 바다도 수다도 좋았다.
운이 좋다.
먹거리 버킷 리스트 중 네 가지를 오늘 해결했다.
갈치, 고등어, 성게, 오겹살.
그리고 카페 두곳에서는 제주산 원액인지 판단하기는 약간 모호한 유자차와 자몽차.
너무 먹기만 한다고 흉보던 내가
제주 여행 유튜브를 찍은 그 많은 유튜버들과
별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다.
평균적인 삶이 좋은 것이다.
약간만 튀는것 그것을 창의성이라고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