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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않는 혼밥 요리사의 비밀레시피 139

화요일 제주 먹거리 정리편

by 태생적 오지라퍼

제주에 가기전 무한 반복으로 제주 맛집 유튜브를 보았다.

보았다고 하기에는 그냥 틀어두었던 정도이다.

설거지 하다가도 보고 일하다가도 보고

여하튼 오다가다 본 것은 많다.

그런데 딱히 가봐야지 먹어봐야지 결정한 것은 없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무엇을 볼 것인가를 결정해야

그 주변에서 먹을 것을 정할텐데 그것조차 정한 것이 없었다.

화요일. 그렇게 막연하게 비 내리는 제주에 내렸다.


비행기 타기 전 공항에서 야채 김밥 다섯 알을 먹긴했으나

막상 호텔 예약을 확인하고 캐리어를 맡기고 나니 긴장이 풀린 듯 배가 고파온다.

비가 와서 미술관 밖에 갈 곳이 딱히 없는 듯하여 저지리 예술인마을 쪽을 행선지로 잡고 택시를 불렀다.

밥을 먹고 미술관 투어를 할 것이라 이야기하고

식당이 있는 곳에 내려달라 부탁드렸더니

예술인 마을에서 한 정거장쯤 더 지난 저지오름 입구쪽에 내려주었다.

(예술인 마을에는 식사할 곳이 두 곳 정도밖에는 없더라. 나중에 걸으면서 확인해보니)

배는 많이 고프지만 이곳 저곳을 둘러본다.

나름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는 스타일은 아니고

맛집을 찾아내는 촉이 조금은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어제가 대체공휴일이어서인지

오늘이 휴일인 식당들이 꽤 있다.

먼저 중국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사람이 꽉 차있다.

맛집인 듯 하나 일단 대기해야 하고

제주까지 왔는데 첫 끼를 볶음밥을 먹는 것으로 타협하기가 싫어서 과감히 패스한다.

아래쪽으로는 더 이상 눈에 띄는 식당이 없다.

거슬러 올라가 보기로 한다.

한 곳 느낌이 있는 식당이 있는데 또 휴일이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아까 그 중국집을 다시 갈까 하는 순간에

내 눈에 뜨인 곳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닐하우스 같은데 집촉이 발동한다.

대기 2번째 쯤은 참을 수 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봤던 맛집 유튜브에 있었던 곳이라는 것을.

대기표가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었다.

커다란 나무 주걱에 숫자를 써서 대기표로 나누어주는

그러니 마켓팅에는 무언가 차별화 전략이 꼭 필요한 법이다.

갈치구이 2점(그다지 도톰하지는 않았다만)

고등어 무 조림(내 양에는 맞는데 다른 사람은 적다고 할 듯)

그리고 성게 냄새가 약간 나는 미역국(성게알이 왕창 들어간 그런 것은 아니다.)과 밑반찬들.

11,000원의 가격에 이 정도면 가성비가 우수한 편이다.

그 중에 내가 가장 맛나게 먹은 것은 콩나물인데 고춧가루 적당한 시골 밥상 고유의 맛이었다.


저녁은 오늘 제주로 부부가 여행을 온 친구와 하귀초등학교 근처에서 만났다.

다행인지 친구 남편은 오겹살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신혼여행을 제주로 와서도 오겹살을 안먹겠다하여

첫 부부싸움을 할 정도란다.

그런 히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니 과감히 남편을 버리고 나를 택하여 오겹살을 먹으러 나와주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애월-한담공원 근처까지

해변 산책을 유유자적 즐기다가

유명한 오겹살집에 들어가려 했으나

비가 추적추적 꽤 내린다.

우리가 뭐 애절한 연인도 아니고

멋을 찾거나 영상을 찍는 20대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겠나

바다가 보이는 오겹살집이면 되었다.

오겹살이라 너무 두꺼운 것이

나이 든 우리에게는 문제인데

그 직원은 젊어서 그런걸 모른다.

듬성듬성 잘라서 대강대강 구워준다.

괜찮다.

천하무적 아주머니 두 명이 더 잘게 잘게 잘라서

충분히 구워서 먹었다.

함께 나온 호박, 꽈리고추, 버섯 구운 것이 더 좋았다.(나는 비건이 아닌데)

멜젓도 좋았지만(난 그 맛을 제대로 아는건 아니다.)

요새 고기에 와사비 살짝 올려 먹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그 집은 김을 깻잎처럼 간장에 재워둔 것이 있었는데 그것도 괜찮았다.

저녁은 친구가 굳이 퇴직 기념이라고

오겹살을 자기가 훨씬 더 많이 먹었다고 사주었고

우리는 조금 해변을 걷다가 바다가 보이는 통창 카페에 들어가서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헤어졌다.

마침 그 카페는 우리가 독채 전세를 낸 셈이었고

음악도 바다도 수다도 좋았다.


운이 좋다.

먹거리 버킷 리스트 중 네 가지를 오늘 해결했다.

갈치, 고등어, 성게, 오겹살.

그리고 카페 두곳에서는 제주산 원액인지 판단하기는 약간 모호한 유자차와 자몽차.

너무 먹기만 한다고 흉보던 내가

제주 여행 유튜브를 찍은 그 많은 유튜버들과

별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다.

평균적인 삶이 좋은 것이다.

약간만 튀는것 그것을 창의성이라고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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