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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골목 투어 서른 아홉번째

서울과 길 하나 차이 하남시 산책

by 태생적 오지라퍼

현안 처리를 위하여 하남시를 가본다.

하남시를 와보는 것은 세 번째 인 듯 한데

뚜벅이로 찾아가는 것은 처음이다.

내가 가장 좋아라하는 지하철을 타서 근처역에 내리고

주변에서 오늘의 약속장소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그리고 다시 그 근처에서 걸어가는 것이 목표였으나

길치 본연의 미생은 지하철역에서 택시를 타는 것으로 결국 마무리한다.

버스와 도보로 가는 것에 시간을 맞추었으니

당연히 약속 시간보다 일찍 근처에 도착하고

남는 시간은 하남시 초이리 부근을 산책하는 것으로 활용한다.

걷는데 남는 거다 생각하면서.

일부러 운동을 하러 돈 주고도 가는데

돈도 안들고 근육은 지키고 시간도 잘 가고

식욕도 생기고 잠도 잘 안오게 될 것인데 안할 이유가 없다.


신기한 소리가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에 닭들이 보인다.

어느 공장에서 텃밭에 닭을 키우는 듯 하다.

얼마만에 보는 닭인지 모른다.

새하얗고 입 주위만 검정색이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검정색 닭도 있다.

이렇게 보니 닭도 고양이보다는 못하지만

이쁘고 활기차다.

강동구와 단지 길 하나 차이인데 공기와 청량한 정도가 다른 듯도 하고

조금 더 걸어가다보니 멋진 한옥도 보인다.

전시장이나 아니면 지방자치단체 건물이지 싶었는데 개인 주택인 모양이었다.

안내판도 없고 문도 닫혀있다.

이렇게 고풍스러운 자태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텐데 싶다.

담벼락의 나무마저 우아하기 짝이 없다.

이전의 방문에서 본 하남시 초이리는 공장만이 듬성듬성 있는 곳이었는데

그 사이 사이에 이런 멋진 공간들이 숨어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러니 어느 곳이든 천천이 관심을 가지고 산책하지 않고서는 진면목을 모른다.

사람도 그렇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으면 진면목을 발견할 수 없다.


우여곡절 끝에 오늘의 제일 큰 일정을 마치고는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하남 제일의 핫플레이스(순전히 내 생각이다.)

이름만 듣던 하남스타필드를 방문해보기로 한다.

하남검단산역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어느 곳이든 지하철역 근처 역세권을 제일 선호한다.

하남 스타필드는 백화점과 대형마트나 아울렛과의 접점에 있는 듯 하다.

서울 시내 백화점보다는 각 매장 간격이 넓어서 여유로왔고

특히 국내와 국외 자동차 전시장이 모두 모여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맛집도 많이 입점되어 있어서 주변 아기 엄마들의 나들이 코스로는 딱이었다.

무엇을 먹을까 잠시 고민했으나 매콤달콤한 소스가 입맛을 돋구는 분짜를 고수 조금 추가해서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막내가 보내준 MBTI 별로 금지하면 미치는 것들에 대한 고급 유머를 읽었다.

나는 INFJ여서 돌려말하기 금지를 어려워 한단다. 직설적이라는 것이다.

대충 맞는 것도 같다.

<빙 돌려 말하기, 사람들 간보기, 밀당하기, 딜하기> 이런 것들을 못한다.

잘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못한다.

그러니 무슨 이득을 보겠나 말이다.

그러나 괜찮다. 사람 생긴대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는 10년쯤 전 제자에게 오랜만에 DM이 왔는데

자기 호기심의 원천은 나와 함께한 토요일 방과후 활동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금융관련 직업을 지원하고 있다는 꼼꼼했던 그 녀석의 특징을 기억해주었더니 좋아라했다.

한법 뵙고 싶다한다.

작년 제자 녀석이 기초학력 평가 시험에서 쉬운 것을 틀려서 기운 없어하는 투정에 따끔하게 정신차리라고 답을 보내주었더니 보고 싶다고 한다.

과고에 진학한 제자 녀석의 발명품 경진대회 아이디어 초안에 의견을 달아주었더니 좋아라 한다.

녹색기후상 수상 기념 플랜카드가 학교운동장에 걸린 사진을 공유해주었더니 기뻐라 한다.

첫 해 제자 녀석들이 이번 주 토요일에 모임을 갖을 예정이라고 나오라고 하는 연락도 받았다.

이쯤이면 백수로서의 하루를 허투루 보낸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이 글을 쓰다보니 30여년전쯤 한창 유행이던

하남시 미사리에 다녀갔던 기억이 났다.

브런치글을 쓰는 것이 예전 기억을 돌이키고

두뇌를 사용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모양이다.

한참 젊었던 그때의 우리는 한강이 보이는

미사리 카페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고

라이브바에서 당시에 잘 나가던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따라 불렀던 것 같다.

그 때 멤버 중 가장 직설적이었던 동료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이렇게 비싼 커피를 먹느니 나는 소주 5병을 먹겠다.>

그래서 그 이후로 다시는 미사리 카페를 가지 않았다.

직설적인 것이 매번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오늘의 하남 나들이는 나름 의미와 재미를 모두 찾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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