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와 세탁
이미 1월부터 2월에 걸쳐서 많은 정년퇴직맞이 선물을 받았다.
꽃부터 음료 쿠폰, 케잌과 쿠키, 내가 늘상 목에 두르고 있는 머플러, 멋진 문구가 새겨진 골프공 등
연예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좋아했고
나를 울린 것은 편지 선물이었다고
이미 여러 번 글로 옮겼다.
오늘 나는 나에게 정년퇴직맞이 겸 봄맞이 선물을 주려 결정하였다.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난번에 거창하게 희망한 새 자동차는 아니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선물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눈에 별로 보이지 않던 먼지가 엄청 보인다.
고양이 설이가 이쁜 것은 이쁜 것이나
털이 엄청 많이 날리고 그 털은 구석구석에 숨어있고 로봇 청소기로도 다 해결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아들 녀석 방은 사실 엉망진창이다.
자기 방에 들어가는 것을 질색팔색하는데
청소도 잘 하지 않으니 그 방 꼬라지가 어떨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방도 그렇지만 화장실은 또 어떨 것인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1주일에 한번 한나절 청소여사님의 도움을 받았으니 상태가 유지되었었는데
남편의 항암이 시작되면서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불규칙해지고 해서
더 이상 청소여사님의 도움을 받지 않은지 넉달째다.
아무리 내가 최선을 다하고
로봇 청소기들을 돌려댄다고 해도
이제는 힘에 부치고 버거움을 느끼는 중이다.
결정적으로 집에 오래 있으니 자꾸 더러운 곳만 눈에 보인다.
두 개의 화장실과 음식을 만드는 가스렌지와
기름때가 보이는 인근 붙박이장이 가장 큰 난관이다.
나는 청소할래 요리할래 묻는다면 물론 요리를 선택할 것이다.
청소할래 빨래할래 하면 빨래를 선택할 것이다.(세탁기가 청소기보다 효율이 높다.)
청소할래 다림질할래 하면 마지못해 청소를 선택할 것이다.
내 주위 정리하는 청소는 잘하고 좋아라하는데 화장실과 기름때 청소는 좋아하지 않는다.
마침 이번 주 아들 녀석은 일주일간
외국 출장이고(출장인데 노로바이러스 장염에 걸렸다.)
월요일에 항암주사를 맞은 남편은
이번주 일이 많다면서 오늘 저녁에 공장으로 내려갔다.
일요일 시어머님 생신과 시아버님 기일 축하 행사때 만나면 된다.
오늘 저녁부터 토요일까지 나는 온전히 집에 혼자이다. 아니다. 설이와 함께이다.
급 청소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주는 정년퇴직기념 선물로 말이다.
깨끗한 집을 나에게 선물하는 거다. 멋지지 않나?
비용은 꽤 나가더라만 깨끗해질 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오늘 그 사전 작업으로
설이 스크래치 장난감 두 개와
설이 발톱으로 피폐화된 천으로 만든 의자 하나도 폐기물 신고하고 버렸다.
놀래서 똥그래진 설이 눈을 보았으나 모른척 했다.
전문업체 청소는 집에 있을 시간이 갑자기 많아진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일 수 있다.
정신없어 할 고양이 설이는 그날 내가 데리고
이방 저방으로 피신해야하는 어려움이 있겠다만.
정년퇴직 선물로 전문가를 초빙한 청소를 예약했다면
봄맞이 선물로는 당연히 겨울 두꺼운 옷의 세탁이 마땅하다.
추운 겨울 나의 출근복이었던 패딩과
집에서 주구장창 입었던 털조끼
요새 나의 최애였던 기모들어간 후드티를
이제는 세탁하여 넣어두어야 할 것 같다.
내일 아침에 세탁소 사장님께 수거를 요청하면 되겠다.
오늘 공장으로 내려가는 남편을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면서 산책을 잠시했는데
와우 날씨가 이제는 봄이라는 것을 누구래도 알 것 같았다.
운동겸 1일 1산책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이런 날씨라면 1일 2산책도 가능하지 싶었다.
그리고 봄을 환영한다는 꽃, 영춘화가 피기 시작하는 것도 보았고
얼어 붙어있던 호수가 다녹고
그 호숫물 위로 거위 한 쌍이 꽥꽥 거리는 것도 보았다.
이제 과감히 겨울옷을 차례로 정리해야 할 때가 왔다.
출장 간 아들 침대 패드는 지금 세탁하는 중이고
이불도 빨아두려 한다.
집에 가만히 멍하니 앉아있는 일은 나와는 정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청소와 빨래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지난번 10초 기절때 다친 허리가 아파온다.
선물을 주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도 의미있다.
그런데 남편이 그 선물을 준다면 마다하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