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입맛의 변화를 누가 막으랴.
원래 음료나 물을 많이 먹는 스타일이 아니다.
물은 대부분 약을 먹을 때 주로 먹는다.
다른 음료로 대체할 수는 절대 없으니 말이다.
원래는 지금보다 물을 더 안 먹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목이 마르면 물을 먹는 스타일이기는 하다.
자꾸 밥먹는데 물을 마시게도 된다.
혼밥이라 목이 메이는 모양이다.
목이 마르다는 느낌은 딱히 없는데
피부가 건조하거나 입술이 따가와져서 물을 먹어야 되겠다는 시그널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입덧때에는 물에서도 냄새가 나서 맹물을 먹지 못하는 시기도 있었다.
이러다가 큰 일 나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서 미지근한 물 한잔.
이런 것은 시도하기가 힘들다.
먹기는 한다. 두 모금. 오로지 약을 먹기 위해서다.
음료 생각은 별로 나지 않았다.
빵을 먹을때가 가장 생각이 날때이다.
그것도 부드럽고 달콤한 빵을 먹을때는 별로 생각나지 않고
퍽퍽하고 심플한 빵일 때 생각이 난다.
물론 커피가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여러번 고백했으나 커피맛을 잘 모른다.
너무 신미가 강한 것만 아니면
그리고 너무 쓴맛이 강한 것만 아니면 오케이다.
대학 초기 커피 위에 크림을 얻은 그 당시 최고급 유행의 비싼 비엔나 커피에 혹한 적은 있는데
아마도 크림맛이 좋았던 것일게다.
그때는 비엔나 커피를 시키면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로 비쌌다.
그 달달한 크림만 걷어먹고는 커피는 남긴 적도 많았다.
따라서 커피 맛에 진심인 사람들을 보면 고수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올 것 같다는 두려움도 조금은 작용한다.
그리고는 제일 오랫동안 내가 좋아라했던 음료는 뭐니뭐니해도 코카콜라 한 모금이었다.
병이나 캔을 따서 먹는 그 한 모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국의 맛이었다.
친정 아버지도 고모도 모두 콜라를 달고 사신 분들이셨다.
나도 피자집에서나 스파게티집에서 혹은 고기집에서의 음료는 무조건 코카콜라였다.
(같은 콜라이지만 펩시콜라는 또 좋아라하지 않는다.
왜냐고 물으면 그 맛이 아니라서이다. 코카콜라에 먼저 스며든 것이다.)
그런데 작년부터인지 더 이상 나의 대형마트
주문 리스트에서 코카콜라가 사라지게 되었다.
캔 하나를 따서 한 모금은 그냥 저냥 괜찮은데
그 이후로는 못먹겠는거다.
돼지고기 수육 보쌈을 삶을 때 나머지를 넣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못먹고 버리는 것이 아까웠다.
그리고 그 첫 모금도 옛날처럼 강렬하지 않은거다.
수십년 사랑이 이렇게 식어버리다니.
콜라는 지금이지만 사이다는 예전에 단칼로 자르듯 먹지 않았었다.
너무 대놓고 설탕물이어서이다.
그런데 이제는 콜라도 설탕물이라는 것을 인지했나보다. 이제서야.
올해 들어서 지금껏 눈길도 주지않던 차 종류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물론 아주 조금이다.
10년도 더 전 2월말에 안국동과 인사동을 누비면서
새 학기에는 우아하게 차를 마셔보리라 생각하고 샀던 찻잔이 있다.(위의 사진이다.)
그동안 쓰임새가 없어서 거의 진열 수준이었는데 버리지 않기를 잘했다.
버리기에는 그 자태가 아직도 너무나 우아하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무늬가 단순해서 그런듯 하다.
이제 일이 없는 오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면서
차를 조금씩 마셔본다.
물론 아직 내 손으로 차를 직접 골라서 사본 적은 없고
선물로 받거나(요새는 옆자리 부장님이 주신 차를 마시는 중이다. 힘든 장학사로 전직하셨고 제일 힘든 업무를 받았는데 잘 지내시나 모르겠다. 화이팅이다.)
아들 녀석이 출장갔다가 가져온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리고 너무 진한 것은 힘들어서 물을 여러 번 넣고 여러 차례 우려서 먹곤 하지만 조금씩 차에 익숙해져간다.
커피에서 청량음료에서 차로의 변화.
아마 이것도 나이먹음이 가져다주는 자연스러운 변화일 것이다.
그래서 선배 교사님들은 다 자리마다
커피잔과 찻잔이 나란히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커피를 못 마시면 정신이 안 차려지신다는 분들은 젊은 거다.
카페에서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고 디테일하게 오더를 하는 분들은 더 젊은 거다.
나는 고를게 없더라. 자리값은 해야되는데 말이다.
( 이 글을 읽은 제자 녀석이 자기가 즐겨먹는 차라면서 카톡 선물을 보내왔다. 자꾸 늙어가는 글을 쓰는 스승이 보기 짠했나보다. 마시고 다시 예전의 에너자이저로 돌아가련다. 그러면 잔소리가 심해질수도 있는데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