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특정 요일이 주는 무게감

그 무게감 조차 이제는 그립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학교에 다닐 때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가 매우 중요했다.

물론 요일마다 시간표가 다르니 더더욱 그랬다.

월요일은 한 주의 시작이었고

월요일 첫 수업이 매끄럽지 않으면

한 주간 기분이 꿀꿀해지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었고

오후에는 직원회의나 연수가 있었으니

월요병은 딱히 없었으나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무게감이 있었다.

아무리 출근을 좋아하는 이상한 체질의 나라고 해도 말이다.

화요일과 수요일은 수업이 가장 많은 날이었고

아마도 수요일쯤에는 꼭 실험 평가나 수행 평가를 진행했을 것이다.

월, 화 수업에 예고를 하고 연습을 하고 수요일에 평가를 보는 시스템이다.

목요일은 오후에 동아리나 창체활동이 있으니

어떤 주는 한숨 쉬어가기도 하고 어떤 주는 행사 준비로 더 바쁘기도 했다.

금요일이 주는 약간의 이름모를 평안함과 느슨함은 직장인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이번 주도 별일없이 잘 버텼다는 마음이 들 때쯤

부장교사 회의를 하고

갑자기 떨어지는 정체불명의 일들을 수습하고 나면

금요일 퇴근 즈음에는 여지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다른 사람들도 그래서 회식을 금요일에 하지 않고 목요일로 옮겨서 하는 듯 하다.

그리고 만족감도 들었다.

이번 주도 잘 보냈다는 스스로에게 대한 만족감말이다.


주말이라고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 정도 연배가 되면...

아이가 어릴 때 직장인의 주말은 보상 차원에서라도

아이와 함께 무엇인가 새롭고 재밌는 것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놀이동산에도 가야하고

밀린 공부도 봐주어야 하고(그러다가 화가 폭발하게 될 수도 있지만)

구기 놀이도 해주어야 하고

맛난 특식도 먹어야 했다.

아.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기도 해야했다.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 편하기도 하지만

많이 슬프기도 하다.

저 사진 속의 작품처럼 새 차를 타고 나들이 준비를 하던 시절에 나는 몹시도 젋었을 것이다.

그때 그 바빠서 정신없던 그 시절이 그립다.

주말은 남편을 위한 환자식을 준비하거나

포장해줄 밑반찬을 한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이 없다.

올 3월 2,4주차 토요일은 영재원 강의로 바빴다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오늘은 일요일인데

나에게는 월요일이나 금요일이나 일요일이나 별반 다를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2025년 3월이다.

고양이가 깨웠고 눈이 떠졌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아침약을 먹는다.

1주일이 지난 잔반들을 과감히 정리해서

쓰레기분리수거장에 나가 음식물처리기에 넣었고

돌아오는 길에 관리비 청구서를 찾아서 계좌 이체를 했고

우거지, 양파를 달달 볶다가 된장과 마늘, 대파 넣어

딱 한 끼만 먹게 국을 끓여두고

현미와 검정콩 섞어서 새 밥을 올려두었다.

아직도 나는 우거지와 시래기 용어를 반대로 말할 때가 종종 있다.

우거지는 배추의 겉잎을 삶아서 말린 것이라 부드럽고

시래기는 무청이나 무의 겉잎을 삶아서 말린 것이라 거칠한데 말이다.

텃밭을 해보면 무와 배추는 차이가 많다.

배추는 연약하고 무는 강건해서

배추는 벌레가 많이 꼬이고 무는 별로 없다.

아마 벌레도 부드러운게 좋지 거칠거칠한 것은 식감이 별로인 듯 하다.

물은 무가 더 많이 필요로 한다.

쑥쑥 커서 흙 위로 무가 쑥 하고 올라오는 것을 볼때의 그 기쁨이 생각나서

어디 동네 텃밭이라도 찾아봐야하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베란다가 없는데 상자텃밭을 만들 수는 없다.

고양이 설이가 가만 놔둘 리가 없다.

대파, 고수, 당근은 아쉽지만 물에 넣어 아주 조금씩 수경재배를 한다.

설이가 건드리지 못하게 주방 옆 창문밖에 놓아두었다.


오늘은 2025년 3월 23일 일요일이라고 되뇌어본다.

치매 검사를 가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오늘의 날자와 요일이란다.

그런데 몰라서 대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특정 요일이나 시간이 명확한 삶을 살지 않으면

갑자기 생각이 안날 수도 있겠다 싶다.

3월 한달을 보내보니 그렇다.

학교 다닐 때 나의 일요일은

다음 주 할 일 리스트를 열 개쯤 적어두고

중요 순서를 매기고, 요일별로 출근복을 세팅해두고,

주중 힘들 때를 대비해서 밑반찬을 만들어두는

그러다가 지치면 특식을 배달해먹거나 외식을 하는 아주 바쁘고 신나는 날이었다.

오늘은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문서를 인쇄하고 정리해놓는 일. 그것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결정해야 할 사항은 있다.

프린터 하나를 사야하나 싶고(매번 관리사무소에 가기는 좀 그렇다. )

엑셀, 워드, PPT 작업을 위해서 개인용 MS 프로그램 구매를 해야하나 등의 사소한 문제이다.

3월이 가기 전에 이 문제는 결정을 내릴까 한다.

오늘은 그럼 이 문제에 대한 시장 조사나 해볼까나.

다음 주 중요한 일은

혈압과 고지혈증 약 두 달치 받아오기와 염색이 있다.

그런데 새롭고 중요한 일이 생겨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정 요일이 주는 무게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집 앞 사거리에서 24시간 운영하는 무인 인쇄 카페를 발견했다. 흑백 프린트 한장에 39원이다. PDF 파일 만들기도 39원. 그 거리를 지나다녀도 못봤던 곳이다.

한 가지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가방 스타일 변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