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봄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신발에 고맙다.
나의 발과 발가락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 당시 여자의 발 치고는 엄청 크며(어려서 영양 과잉이었나보다.)
엄지발가락은 튀어나왔고 내성발톱에다가
지금은 발가락이 휘어져서 티눈까지 존재한다고.
그러니 나에게 신발을 선택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고난의 길이었다.
일단 제일 힘들었던 것은 맞는 사이즈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여자도 255사이즈까지도 나오고 남녀 구별이 없는 스타일도 있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 여자 신발은 240이 최대인 곳이 많았다.
특히 모 여대 앞 그 많던 수제화 구둣가게는 더더욱 그랬다.
240이 최대이고 앞 볼은 뾰족한 구두들만 있는 그 곳에서 내 신발을 찾기는
초등학교 소풍날 보물찾기보다 더 힘들었다.
나는 그때도 245는 되어야 신을만했다.
240으로는 앞 발가락이 도저히
꼬물락거릴수도 숨을 쉴 수도 없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어느 구두 가게에서 직격탄을 맞는다.
<발이 엄청 건강하시구나.>
수제 구두를 그날로 포기했다.
굽의 높이도 문제가 되었다.
3cm 이상만 되면 걸음걸이가 뒤뚱거려지고
그 때 나의 튼실하던 몸무게를 과연 저 구두굽이 버틸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때도 직격탄을 맞았다.
옆 학교에 다니던 이종 사촌 언니였다.
<7cm 되는 하이힐을 신으면 세상이 달라져보인다.
윗 공기도 마셔봐. 얼마나 날씬해보이는지 아니?>
그런데 그 뒤로도 구두굽에 미안해서 하이힐을 신지는 못했다.
내 평생에 하이힐을 신은 날은 없었다.
결혼식날도 말이다.
사실은 신을 이유가 없었다.
남편보다 키가 커보여서 뭐할거냐.
젊어서는 발의 크기와 굽의 높이만 고려해서 신발을 고르면 되었으니
일단 발이 들어가고 굽이 낮으면 사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점점 엄지발가락 옆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앞 볼이 작은 신발은 이제 더더욱 안되니 선택의 여지가 점점 좁아진다.
할 수 없이 더 큰 신발을 사서 끌고 다니게 된다.
걸음을 걸으면 신발이 헐떡거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보통 때는 괜찮은데 격식을 차려야 할 때는 눈에 거슬린다.
나름 모든 착장의 완성은 신발이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고
따라서 학교에서 신는 실내화도 고민을 하는
예민한 스타일인데 말이다.
그때부터 외국에서 들어온 사이즈가 넉넉하고 굽은 거의 없는 플랫 슈즈를 선호하게 되었다.
운동화는 운동할때만 신던 것이었는데
언제가부터 모든 옷에 운동화를 신는 것이 나름 유행인 시절이 도래했다.
이제는 결혼식 빼고는 운동화 신고 갔다고 뭐라 흉볼 사람은 없는 시대이다.
운동화를 신으면서부터는 신발에 대한 나의 강박이 어느 정도 사라지게 되었다.
색깔만 다른 운동화를 몇 개 준비해서 그 날의 옷과 맞추면 되니 편하고
사이즈가 다양하게 나오니 나에게는 댕큐인 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몰랐던 문제가 나타난다.
운동화란 기본적으로 운동에 적합하게 만든 것이니
앞쪽에 힘을 주는 달리기 등의 운동을 위해 앞쪽의 탄력성이 기본이다.
그렇다보니 구조적으로 발가락들이 너무 붙어있게 되고 이런 점이 나의 티눈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싶다.
이제 생각하니 그렇다.
어제 지하철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의 신발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앞 볼이 넉넉한 운동화나 어르신용 미끄럼 방지가 되는 가죽 신발 종류가 대부분이다.
신발만 봐도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겠다.
어르신용인데 매끈하고 디자인도 멋지면서 가볍고 신축성있고
색도 무난하면서 부티나는 그런 센스있는 신발을 만들어주는 업체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실버산업에는 신발도 물론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내가 1번으로 오픈런해서 살 의사가 있다.
내 요즈음 최애 신발은 아들이 은퇴기념으로 사준 앞 볼 빵빵 운동화인데
검정색은 좋았는데 봄이라 연한 색을 하나 더 살까 하고 살펴보니 재질이 조금 아쉽다.
그래도 발가락 양말 신고 산책 다니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긴하다.
오늘도 나와 함께 찬란한 봄을 누려보자.
직장인들은 봄꽃이 핀 것도 모른채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나만 올해 찍은 꽃 사진이 벌써 백장에 다다른다.
살짝 미안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