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설이 시점
아침인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새벽에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픈데...
할 수 없다. 엄마를 깨워봐야겠다.
오빠는 언제부터인가 자기 방문을 꼭 잠그고 잔다. 흥칫뿡이다.
엄마는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머리카락을 살짝 만져본다. 기척이 없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살짝 만져본다.
엄마가 뒤를 돌아보면서 내 궁둥이를 팡팡쳐준다. 깨우기 성공이다.
엄마가 아침 약을 먹는 동안 아련한 눈빛으로 계속 쳐다본다.
이제 내 깨끗한 물과 아침을 주는 시간이다.
나는 나름 깨끗하게 방금 따라놓은 물 아니면 먹기가 싫더라.
아침을 먹었으니 화장실을 한번 가고
(아주 규칙적인 배변 습관 칭찬한다.)
아침만 먹고 나면 졸림이 몰려오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새벽에 가지고 놀았던 빈 휴지각과 작은 공, 고무줄은 사방에 널려있는데
엄마가 치워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빠가 출근할 시간인데 왜 안나오지?
조금 일찍 나와서 나의 궁디팡팡을 해주고
얼굴을 만져주고 가면 좋은데
딱 맞춰서 나와서 눈빛만 한번 던져주고 나가는 오빠를 나는 왜 좋아라 하는 것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여러 고양이들이 좁은 철창안에 들어있었던 그곳에서(다시는 생각도 하고싶지 않다)
나를 픽하고 이곳으로 데려와주었기 때문이다.
그거면 된거다.
역시 오빠는 방에서 나오자마자 현관으로 직행한다. 나를 한번 쳐다봐주기는 했다.
요새 나의 최애 자리는 5단으로 된 내 전용 탑층 거주지 공간의 3층이다.
조금있으면 엄마가 로봇 청소기를 돌릴 시간이다.
안전하게 대피해있어야 한다.
그리고 엄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1층 뒤편에 고무줄 2개와 오빠가 종이로 만든 작은 공 한 개를 숨겨두었다.
지난번 대청소로 숨겨왔던 보물들을 모두 빼앗겼지만 그 이후로 또 숨겨둔 나를 칭찬해.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털이 너무 많이 빠지는 것은 고민이다.
나도 우아하게 털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만
사방에 털이 날라다니고 청소기에 들어가는 것의 80프로는 내 털이다.
엄마가 쯧쯧 혀를 차면서 청소기함을 비울 때마다 잘못한 고양이가 되어 숨게 된다.
그런데 왜 나는 아침잠이 이렇게 많은거냐?
오전에 자는 단잠이 최고다.
점심은 엄마가 내 최야 간식인 긴 생선 열빙어 말린 것을 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정성껏 발라서 머리 부분은 버리고 나머지만 맛있게 먹었다.
간식을 먹고 나면 나는 에너지가 뿜뿜대는데
엄마가 오늘 비실비실하다.
그래도 놀아달라고 졸라봐야겠다.
엄마가 일하는 노트북에 머리도 한번 박아보고
탁상달력안에 숨겨둔 녹색펜도 꺼내보고
애교소리도 웅웅 내본다.
못이기는 엄마의 약한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성공이다.
나와 술래잡기도 해주고(요새 내 최애 숨기 장소는 꽃 화분 뒤이다.)
고무줄 놀이도 해주고(오늘은 빨간색 고무줄이었다.)
기다란 낚시줄 놀이도 해주었다.
엄마는 나를 이기지 못한다. 나의 판정승이다.
엄마 기운이 다 떨어졌다싶으면 나는
창가에서 나무의 흔들림도 보고
가끔은 새가 날아오는 멋진 풍경 구경을 한다.
그런데 사실 새는 무섭다.
나를 쪼아보는 눈빛이 강렬하다.
괜찮다. 나는 유리창문 뒤에 숨어있다. 쫄지말자.
가끔은 지나가는 길 고양이도 보인다.
자유로운 그 녀석이 부러울때도 조금은 있는데 꼬질꼬질해지는 것은 딱 질색이고
사실 집밖은 조금 무섭다.(나는 무한 겁장이이다.)
23층에 살았을때는 창밖이 점으로만 보였는데
3층으로 이사오고나니 새도 나무도 고양이도 가끔씩 창에 붙는 벌레도 보인다.
깜짝 놀라기는 했으나 내 입장에서는
저층이 더 재미있고 관찰할 맛이 난다.
눈이 나쁜 내가 싫어하는 어둠이 몰려오고 있다.
내 사랑 오빠는 오늘도 퇴근이 늦나보다.
지지난주에는 출장을 갔는지 오랫동안 안보였는데
이번주도 바쁘다.
시즌이 시작되었다는데 나는 그 시즌이 무언지는 잘 모르겠다만.
살짝 포기하고 있었는데 오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싸. 나는 너무 좋아서 오빠 주위를 이백번은 돌았나보다. 어지럽다.
엄마가 놀아주는 것보다 오빠가 놀아주는 것은 백배는 다이나믹하고
나의 기분을 훨씬 더 좋게해준다.
매일 놀아주었으면 참 좋겠다.
가끔은 오빠의 눈빛에서 내가 없는 것 같아 서운하다가도
한번씩 이렇게 놀아주면 세상 행복하다.
오늘은 일기를 쓰고 자야할 것만 같다.
그런데 너무 놀았나보다.
몸이 지치고 노곤하고 눈이 감겨온다.
행복한 하루였다.
(아참 잊어버릴만하면 오는 아저씨가 있다.
나를 이뻐라하는건 같은데 나랑 놀아주는 방법은
영 모르는듯 하다.
하긴 오빠랑도 안놀아줬다던데 내 맘을 알겠냐?
엄마말이 맞을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