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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4분기 결산 : 여행편

5월 마지막 주에 대한 환상이 있다.

by 태생적 오지라퍼

꿈같은 정년퇴직 후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역시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임을 뼈저리게 느끼는 하루 하루이다.

매일 매일은 그저 그저 별다를 것이 없지만

그 매일 매일의 심심함까지도 전혀 보장받을 수 없는

내 노년의 시작점이다.

평온한 것을 별로 좋아라하지 않으니 앞으로 어떤 다이나믹한 일이

나를 또 즐겁게도 힘들게도 할지 알 수 없지만

아무쪼록 즐거운 일이 힘든 일보다 1% 정도만 많기를 바랄 뿐이다.

이쯤에서 1/4 분기를 돌아본다.

오늘은 여행편이다.

자잘한 서울 주변 산책은 제외한다.

여행이란 자고로 간단하게나마 짐을 싸서 떠나야 여행이다.

잠을 자고 오는가 아닌가는 무관하다. 당일 여행으로도 충분하다.

3월부터인 학교 시점으로 보면 이제 1/4분기가 지나간 셈이지만

1월부터인 올해로 보면 벌써 상반기가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이다.

일단 나는 익숙한 3월 시작으로 생각해보련다. 그것이 마음이 편하다. 앞으로가 많이 남았다는 느낌도 들고.


3월 : 백수 기념으로 2박 3일 뚜벅이 제주행.

혼자 여행이었고 계획과 무계획이 반반이었고 아직도 찬란했던 동백의 잔상이 남아있음.

우연히 찾은 옛 제주 기상청 건물이 기대치가 없었어서 좋았고 제주는 제주였다.

여행왔다는 느낌을 내고 싶으면 제일 적당한 곳.

내 기준으로 가장 먼 거리의 나들이 장소임.

해외를 혼자 나가는 것은 아직 욕심내기 힘듬.

(고양이 설이가 앉아있는 저 가방과 함께였다.)


3월과 4월의 연결점 : 1박 2일 부산행.

성향이 다른 후배와 이제는 엄청 편해진 여행이었고(나만 그런가?)

항상 부산에서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후배 때문에 숙소와 기차표만 있으면(비행기가 더 호율적일 수 있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따라만 다니면 되니 편한 친정집 다녀온 기분임.

돌아가신 고모 산소를 방문해서 마음의 짐을 조금은 내려놓은 느낌이 들었다.


4월 : 당일 단양행.

오래 전 귀향해서 단양에서 완전 자리잡은 지인을 만나러 선배와 함께 나들이.

단양은 지질답사 등으로 두어번 가보았으나 내 마음에 지리적으로 먼 곳이었는데

기차 타고 지인의 차로 돌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음.

제천은 멀지 않다고 느꼈는데 단양은 멀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지질답사에서의 어려웠던 기억의 트라우마였던 듯. 이제는 말끔하게 그 기억을 지웠다.

역시 안좋은 기억은 더좋은 기억으로 덮어지는 법이고

오래된 좋은 추억은 한참만에 만나도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낌.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5월 : 아르바이트로 나선 여주와 용인, 수원행.

자의로 나선 길을 아니지만 오랜만에 하루 종일 버스 투어.

옛날 아들과 함께한 미국 서부 버스 투어가 잠시 떠올랐고

그때 그 강행군을 함께 한 칠순 기념 효도 여행 오신 분들은 아마 병 나셨을거라고 확신함.

버스를 오래타고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피로감이 상당함.

다음번 아르바이트가 기대도 되지만 약간은 두려워도 짐.

무궁화호 입석은 거의 30년만에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나의 운송수단 가동범위를 약간 넓혀둠.


5월과 6월의 연결점 : 당일 순삭 예정인 대전행.

SRT와 칼국수와 성심당빵으로 점철된 대전행 예정임.

조금 일찍 가서 수서역도 돌아보고 대전역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올 예정.

귀경은 서울역인데 용산역에 서면 거기서 내릴 수도 있음.

지금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변수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람.


6월 : 다시 2박 3일 제주행 예정.

내 체력이나 고양이 설이나 남편과 아들을 고려할 때 2박 3일 이상의 장기 여행은 당문간 쉽지 않을 듯함.

따라서 이번에도 서귀포쪽은 패스할 예정이고 공항에서 최대 멀리 이동 지역은 성산일출봉 정도까지로 생각하고 있음.

동생과 조카와 함께 가니 이번에는 렌탈을 하고

혼밥도 아닐 예정이나 아직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음.

동생에게 어디를 가보고 싶냐하니 아는 곳이 없어서 특히 가고 싶은 곳도 없다함.

무엇을 먹고 싶냐하니 아는 식당도 없어서 특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함.

이런 상태의 동생과 비슷한 스타일의 조카를 모시고 가야하니(그래도 같이가서 너무 좋음)

나라도 계획을 세워야 하나 아직은 마냥 제주 여행 유튜브만 틀어놓고 있음.

사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별로 없음. 닥치면 되겠지 모드 발동.

그래도 지난번 여행에서 가져온 제주 지도는 펼쳐놓고 있음.


점점 내 일정을 적는 다이어리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는 백지인 날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는 타의로 일정이 결정되었다면 이제는 온전히 내 의사로 하루 일정이 결정되는 삶이다.

바뀌어도 너무 180도 바뀌어서 아직은 적응되지 않는다.

토요일 4시간 연강에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에 목이 살짝 어제부터 아파오기 시작한다.

둘 중 어떤 요인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두 가지 요인의 합작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프면 안되는 것은 언제나 똑같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마지막 주 시작이다. 묘한 기대감이 있는 한 주이다.

우려하고 있는 나쁜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나는 욕심쟁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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