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오늘 점심 주문은 과하지 않은 음식이었다.
오후에 축구 시합이 예정되어 있으니
헤비하지는 않지만 입맛을 돋구는 것이 필요하다는 어려운 주문이다.
차라리 음식 이름을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이렇게 두루뭉술 이야기 하면 더 힘들다.
5지 선다형 시험문항이 아닌 서술형 문항인 셈이다.
고민 끝에 월남쌈을 준비했다.
있는 야채들을 채 썰고 남은 고기 조금 볶으면 준비 끝.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니고 불도 거의 사용할 필요가 없다.
라이스페이퍼에 싸 먹거나 아니면 쌈 채소에 싸먹어도 된다.
단 너무 밍밍한 음식이 되지 않으려면 소스가 필요하다.
약간은 달고 약간은 매콤한 다양한 소스들을 준비하여
각지의 식성에 맞게 찍어먹으면 되는 과하지는 않지만 창의적인 음식.
회를 잘 못먹는 나는 초고추장의 달달함으로 이를 커버하고
탕수육은 좋아하지만 너무 달달하기만 한 소스는 사양한다.
소금과 참기름이 조금 섞인 기름장에 찍어먹는 소고기와
겨자와 간장이 황금 비율로 섞인 낫토 비빔 소스는 항상 입맛을 돋군다.
어떤 음식은 소스가 음식 맛을 극대로 살리고,
어떤 음식은 소스가 과해서 음식 맛을 망가트린다.
조금의 양이지만 소스와 양념이 음식의 성공을 좌우한다.
인생에도 이처럼 소스와 양념 역할을 하는 무엇인가가 꼭 필요하다.
그것이 누구에게는 친구가 될 수도, 기회가 될 수도, 어떤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메인 재료가 아니라고,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고,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이름이 붙지 않는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월남쌈을 보라. 월남이 붙은 이유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월남쌈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소스이다.
(글은 월남쌈이 주인공인데 사진은 핫케잌이다. 뭐지? 이 날의 나에게 묻는다.)